여섯, 열여섯, 스물셋
“언니. 은비는 언제부터 어른이 될 수 있어?"
사촌동생으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나이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열여섯
만약 내가 열여섯이 아닌 스물여섯이었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싶다. 아마 털털한 척 씩 웃으며 동생의 짧은 단발머리를 헤집어놓고 ‘짜식, 나이 먹는 게 좋은 건 줄 알아? 어린 게 최고야.’ 대충 이런 식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서른여섯이었다면, 마흔여섯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열여섯이었던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조그마한 동생의 몸을 품에 꼭 껴안고는 대답했다. 오묘한 표정을 들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글쎄? 언니도 어른이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왜, 아까 아빠랑 마지막 인사할 때 언니도 들어갔잖아.
은비도 아빠 보고 싶다고 했는데 고모랑 엄마가 어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거랬어.”
아, 그러니까 여섯 살 최은비의 머릿속에서 어른이란 가족의 시체를 염습하는 걸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인 거다. 스무 살 넘은 성인도,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도, 경험이 많거나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고 고작 그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퍽 맞는 말이다. 염습이라는 행위에 참여하는 건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그의 가장 마지막을 제 눈으로 지켜볼 용기를 냈다는 거다. 죽은 이의 지나치게 평온한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힘껏 살아가리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이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문제이지 죽은 사람에겐 이미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어른 이외에 어떤 단어로 남겨진 이의 단단함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나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날 밤 우리는 장례식장 제일 구석, 사람 두어 명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 안에서 한참 동안이나 시답잖은 그림 놀이를 한 뒤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여섯 살이 먼저, 열여섯 살이 나중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잠들기 전에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티 없이 또랑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어린 상주, 죽은 삼촌의 딸, 나의 사촌동생에게. 그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겨난 이야기였어.
‘있지, 내가 너만 할 적에 난 삼촌을 돼지 삼촌이라고 불렀어. 시도 때도 없이 내 간식 뺏어먹고, 할머니 슈퍼에서 간식 훔쳐 먹고. 아무튼 삼촌은 우리 가족 친척 통틀어 제일 배가 커다란 사람이었으니까, 앞으로도 옆으로도 말이지. 허구한 날 이런 식이었다? 삼촌이 내가 숨겨둔 간식을 용케 찾아 먹으면 나는 배만큼이나 커다란 그 등짝에 매달려 마구잡이로 소리를 질러. 그럼 저기 부엌이나 거실에서 숙모나 엄마가 또 시작이냐고 두 배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삼촌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이렇게 대꾸하는 거지. “나는 얘 꺼 뺏어먹는 게 제일 맛있더라!”
그런데 은비야. 멀리서 쳐다본 삼촌의 배가 너무너무 작더라. 등도, 손도, 웃음도. 뼈 마디마디가 도드라진 삼촌의 몸이야말로 수의나 화장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그의 마지막이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언니도 숨이 쉬어지지가 않아서 도저히 가만히 서있을 수가 없었어. 결국 도망치듯 그 자리를 뛰쳐나왔지 뭐야. 언니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
열여섯 살은 기어이 자라나 스물세 살이 되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섯 살은 무럭무럭 자라나 열세 살이 되었다.
이건 조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구질구질한 인사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아이들이 자신의 마지막을 볼 수 없게 하라는 게 삼촌의 마지막 유언이랬다. 아픈 와중에도 여섯 살 막내딸이 지나치게 빨리 어른이 될까 봐 그는 어지간히 걱정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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