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인 딸로부터 어버이날 편지를 받았다. 그동안 부모로서 부족한 점이 많이 미안하고 아쉬운데도 최고의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기쁘고 정겹고 감동이 되면서도 아래와 같은 대목에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작년에도 언니가 없었나요.. 기억은 안 나지만 거의 20년을 큰 딸이랑 같이 보내다가 작은딸이랑만 보내려니 허전하셨을 텐데... 하루 종일 짜증 내고 자기만 한 것 같아서 죄송하고.. 양심에 찔리네요. 짜증은 아빠 엄마께 난 짜증이 아닌 전날 공부는 전혀 안 하고 씻지도 않고 잔 저에 대한 짜증이었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한텐 내는 거 아닌데.. 죄송해유
내 딸처럼 성취 의지가 높은 학생들의 특징은 쉽게 좌절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취를 추구하다 보니 내실 있는 기본기보다 당장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어 보이는 것에 집중하기 쉽다. 꼼꼼하게 완전학습을 추구하다 학습서의 진도를 빨리 나가지 못하며 주저하다가 머물러 버린다. 필기를 예쁘게 하며 뿌듯해한다. 학습 내용의 이해도를 떠나 적어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정과 같은 느낌을 중시한다. 컨디션이 좋아 집중이 잘 될 때는 많이 뿌듯해다가 집중이 잘 안될 때면 더 크게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반드시 보상받을 거라고 믿고 있다가 시험 성적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좌절한다.
낮에 이뤄 놓은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수록 밤에 잠을 안 자고 조급함으로 못다 이룬 뭔가를 완성하려고 책을 붙잡고 있지만, 생각보다 능률이 오르지 않으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다른 일들에 열중하다가 시간을 그냥 보내고 나면 본인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많이 괴로워한다. 그런데 그 괴로움은 다음 날 후회 없는 짓을 하지 않는 장치나 동력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학습된 무력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조급함으로 밤에 잠을 못 이루니 낮에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집중이 안 되거나 쏟아지는 잠에 굴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멍하니 낮 시간을 보내고 나면 더 조급해진다. 낮에 수면을 자연스럽게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조급함으로 때로는 벌받는 기분으로 스스로 밤과 새벽시간의 잠을 박탈해버리려 애쓴다.
그리고 그런 악순환이 지속되다 보면 한두 번의 애씀과 의지만으로 벗어나기 힘든 무력감에 더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이성적인 조언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도 모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 짐과 부담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괜찮을 거라는 위로와 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리고 사소한 것부터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목도 있었다.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와도 괜찮다고 해 주시는 부모님이 몇 분이나 될까 싶어요. 오히려 딸이 더 못 믿고 조급해하고...ㅎ 정말 고등학교 입학해서 고2가 될 때까지 아빠 엄마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거예요. 학원 같은 외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자꾸 조급해질 때마다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올해 3월 모의고사, 중간고사 때 괜찮다고 해주셨던 건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자신에게 주어진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남들처럼 편하고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했는데도 부족한 것 없이 다 받았다고 만족해하면서 행복을 전하는 딸의 편지에 눈물이 났다.
지난겨울부터 딸과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아빠 옆에서 수업받으면 힘들다는 이유로 굳이 집을 떠나 독서실이나 카페에 가서 실시간 온라인 Zoom 수업을 받는다.
아빠랑 수업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며 자신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정당성에 대해 언니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어보니 언니는 남자 친구 생각 등 딴 생각을 해서 힘든 거 몰랐다는 답을 했다. 집에서 인정을 못 받는 아빠라니ㅋ
그래도 절실함이 생겼는지 그전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업받는 것을 피해 다녔던 아이가, 본인이 먼저 요청을 하며 야자 마치고도 독서실 가서 조금씩이라도 매일 수업을 한다.
이 이야기를 친구 교사에게 하면 다들 웃는다. 딸하고 같이 살지 않냐면서...
딸에게 편지를 받고 답장 대신 그날 화상온라인수업을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의 성적과 현재의 공부에 대한 자세 등에 대해 그대로 멈춰있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물론 하고 있단다. 그럼에도 지금 너의 모습이 스스로 한심하고 좌절감이 클 수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는 거 아니까 괜찮다... 한 번에 달라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갑자기 식사를 안 하면서 다이어트하면 요요현상이 오는 것처럼 공부도 요요현상이 오니까... 조금씩만 욕심내서 한 걸음만 더 내딛도록 해라... 그러다가 또 집중이 안 되거나 넘어지는 순간이 와도 또 일어서면 되니까.. 그렇게 서서히 너가 있어야 할 자리를 하나님이 인도하실 걸 믿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순간순간 할 수 있는 일을, 부디 재미있고 즐겁게 하길...
그리고 지금 너의 모습 그대로 너가 아빠엄마 딸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언제든 딸이 도움의 손을 내밀 때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잡아주고 있다. 그러나 넘어질 것 같아서 미리 손을 잡아주거나 실패를 안 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다. 아이가 스스로 더 크게 성장하고 깨닫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나 부모는 늘 가슴 아픈 바라봄과 기다림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어린 시절에 사리분별이 안 되고 가치관 형성도 안 되고, 윤리 의식도 아직 희미할 때는 부모의 절대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춘기 즈음 지나서는 아이들의 선택을, 그 선택이 실패나 넘어짐의 징후가 확실할 때에도, 너무 치명적인 선택이 아니라면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선택도 실패도 그 이후의 성장도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성취 등을 조건적으로 칭찬하거나, 아이가 수용되는 느낌을 제한적으로 받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의 좌절의 순간, 같이 아파하며 진심을 전하면 되는 것이지 아이를 다그치거나, 은근한 기대로 압박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 순간 가장 힘든 건 아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늘 이렇게 인식하면서도 매 순간 너무 힘든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그 안정감이 칭찬, 꾸중보다 아이에게 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