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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pr 01. 2023

거짓말 같은 우연한 만남

졸업을 하고 나서 우연히 졸업생을 마주칠 확률은?

내 경험 상 거의 0%에 수렴한다. 특히 집에서 먼 학교일수록 더 그러하다.


오늘 고3 대상 1등급 만들기 프로젝트 3주 차 수업을 하러 직전 근무 고등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런저런 추억들이 하나둘씩 더 깨어나고 있었고, 오늘은 유독 그 학교에서 만났던 한 제자가 떠올랐다. 고1 담임을 했던 학생인데 지역사회가 주목하던 소문난 전교 1등의 학생이었다.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고, 교육특구가 아닌 이유로 의대 목표가 현실적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난 그 아이에게 너 정도 실력과 인성이면 어떤 의대든 갈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인서울 의대를 가도 재미있고 좋겠지만, 혹 지역 의대에 남아도 집에서 가까운 장점을 살리면서 더 행복할 수도 있으니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내게 편지를 써주었던 기억이 난다.


1학기에 이어서 2학기에도 올 1등급이 나오려는 목표에 중간고사를 망쳐버린 국어 성적이 걱정이었는데 최종 결과가 1등급이어서 올 1등급을 완성하는 소식을 전하면서 함께 기뻐했던 그 장면도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영어를 좀 더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며 내가 진행하는 멘토링과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고, 담임으로서 나를 신뢰하고 따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쑥스러움이 많은 학생이었는지 나를 편하게 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난 그저 아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범위 내에서만 그 학생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다 해주었다.



학교를 떠난 후, 그 아이에 대한 소식이 궁금했지만 교사는 기다리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이어서... 그러다 영영 기다림으로 그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저 내가 아는 그 제자라면 꿈을 이루어 갈 거라는 믿음만 가지고 있었다.


입시가 끝날 무렵 반가운 문자가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고3 생활하면서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선생님 블로그도 종종 들어가 보고 그랬어요..ㅎㅎ 입시 다 끝나고 좋은 소식 전해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니 이제서야 연락 드려요ㅠㅠ 저 **대 의대 합격했습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이 선생님이셔서 고등학교 생활 잘 시작할 수 있었고, 선생님께서 저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영어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뵈러 갈게요ㅎㅎ



문자를 받고 너무 기쁜 마음에 바로 답변을 해주었다.​

**아 축하한다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ㅠㅠ 

이제 마음의 무거운 짐은 좀 내려놓았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1학년 때 너에게 어떤 의대든 무조건 가게 될 거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단다. 너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안 보고 부담감으로 힘들어할까 봐 해줬던 말이구. 난 그런 확신이 흔들린 적이 없어서 너의 기쁜 소식도 놀랍지는 않구나^^ 

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좋은 의대라서 정말 잘 됐다. 혹 더 발휘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 너의 능력에 대한 아쉬움은 따뜻한 가족의 서포트를 받으면서 여한 없이 다 발휘되면 좋겠구나.

늘 궁금했고 마음으로는 계속 응원했었단다. 블로그에도 한 번씩 왔었구나^^ 기쁜 소식을 내게도 나눠줘서 너무 고맙다

**은 너의 모습 그대로 늘 나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제자였단다.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될거구. 나중에 코로나 걱정 없을 때 꼭 식사 한 번 하자^^​



오늘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하게 그 제자를 마주쳤다.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였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 고등학교 1학년 때와 같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정겹게 나를 마주했다. 준비 안 된 우연한 만남이고, 각자 가던 길이 있어서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문자에서처럼, 나중에 식사 한 번 하자는 여운을 남기고...


이렇게도 만나진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제자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현실에서 마주하며 나의 확신과 믿음이 팩트로 확인되어 너무 기뻤다.


교사는 현재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들의 과거의 아픔과 성장배경도 다 끌어 안아야 하지만, 상상 속에서 아이의 미래를 만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거대한 하나의 세계이며, 그 세계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공존한다. 부디 나와의 만남으로 인해 그 거대한 세상에 자그마한 균열이라도 생기지 않기를,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보이지 않는 작은 도움의 함성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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