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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20. 2023

중 1 학생들에게 꿈을 외치다

<꿈꾸지 않으면 - 간디학교 교가>

https://youtu.be/VxKuofkSF-A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 자유주제 선택 첫 시간...

왜 미드영어팝송반을 선택했는지 한 사람씩 발표시켰다. 

반 이름에 이끌려서, 가위바위보 져서, 혹은 이겨서, 팝송을 좋아해서, 미드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공부 아닌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그냥 교실 옮기기 싫어서, 친구 따라서...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아이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지 않았다. 장난기와 가벼움이 묻어났다.

그들의 인생을 결정하는 선택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선택의 무게와 사소한 선택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모른다. 선택의 결과를 체험하지 못했거나, 결과를 인지하기에는 너무 어렸을 것이고, 아직은 인생에 결정적인 선택의 경험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아이들을 똑바로 앉히고, 선택의 무게감을 분위기에서라도 감지할 수 있도록 표정과 어조에서 무게를 잡았다.

학생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응석을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앞으로 두 달 이상 매주 금요일 2시간씩 그 긴장감과 무게를 실감하고 느끼길 바란다고.

아이들은 그런 긴장감에서 각기 선택을 후회하고, 가위바위보를 지거나 이긴 것을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어지는 중요한 교훈은, 한 번 선택 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중3 담임선생님인 나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다. 충분한 정보 없이 운에 맡기듯 선택했을 것이다. 때로는 다른 반 학생들과 동맹을 해서 함께 이곳에 오기도 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미칠 결과에 대해 알기에는 정보가 부족했고, 진지한 자세도 부족했다. 보통 선택이 잘못되어도 그들의 가벼운 태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대처하면 그냥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선택 하나로도 삶의 긍정적인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분위기를 진지하게 하고 나서 이렇게 선언했다. 

여러분들은 이제 삶의 무게를 느끼고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왔다고. 그 고민은 자신 삶의 진로와 관련한 꿈에 대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물었다. 

여러분들은 꿈을 want와 like 중 어떤 것으로 선택하고 싶냐고.

대다수가 like를 선택했다.

그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현실을 자각할수록 like가 마비되어가는 듯한 학생들에게는 like를 강조해왔었는데, 아직 like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다니...

want는 좋은 대학 가기를 원하고, 취업 잘 하기를 원하고,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 현실에 바탕을 둔 생각이지만, like는 다소 이상적인 것이라서 아이들이 like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현실과 사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야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해 할 것이 아닌가. 아직 어린 아이들도 선택을 강요받아 주체적인 자기 선택과 즐거운 학습을 위한 자기주도학습의 기회가 박탈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난 아이들의 like를 지켜주고 싶었다. 

꿈을 키운다는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현실화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능력과 역량을 키우면서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면, 그저 생존을 원하게 되고, 뭘 좋아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게 되는 것이니..

난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생각에 머물지 않으려면, 꿈을 계속 키우려면, 현실을 바탕으로 한 실력을 키워야한다는 당부를 했다. 


교사는 학생들의 꿈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를 가진 realize라는 단어가 있다. 말 그대로 real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꿈을 실체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꿈이 그냥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지 않게 꿈에 real 한 실체를 불어넣어 주는 일이다. 물론 꿈을 지켜가는 것은 학생 본인이지만, 꿈과 현실 사이의 먼 거리로 좌절할 때,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거리감을 좁히도록 격려할 수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과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는 건 교사를 비롯한 어른의 역할이다. 

아이들의 헤맴과 넘어짐은 필연이지만, 어른들이 그걸 최소화해줄 수도 있고, 아득히 멀어 보여도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희망고문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둔 조언으로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자체가 꿈의 실현은 아니지만, 꿈의 과정에서 거쳐야 할 단계로서 의대를 가거나 꿈을 이뤄줄 대학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모두가 다 손을 들었다.

그래서 무엇이 여러분들을 좌절시키고 있냐고 물었다. 부모님이나 친구는 아닐 것이니.

그러니까 한 학생이 “수학”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해서 1학기에 처음 수학시험이라는 것을 치르고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어떤 학생은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한 적 없지만, 자신의 뇌가 안 된다 말하고 있다는 슬픈 말도 했다.


아이들에게 자기를 규정하는 것은 자기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고1 때 지방사립대 정도의 실력으로 고려대를 가겠다고 어이없는 선언을 한 이후,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절실함으로 더딘 걸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제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제자는 고 2 때부터 고 1 때 훈련된 자세와 집중력으로 열심히 했지만 고 3 끝나도록 증명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한 번씩 나를 찾아와서 속상해하면서 울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 번도 맞아보지 않은 성적을 수능 때 받아서 결국 고려대를 정시로 합격했다. 

물론 일반화시킬 수 없고, 모두가 고려대를 가야 성공인 건 아니며, 각기 역량과 준비도는 달라서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해보지도 않고 그 어떤 제한도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잘 생각해 보면, 꿈은 못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안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고. 왜냐고? 꿈을 향해 발동을 걸면 치열하게 애쓰고 노력해야 할 것을 직감하고 있으니까, 너무 힘들 것 같으니까,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능력의 문제인 양 움츠려 들지 말고, 그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속단하지는 말라고.


1학년 2학기... 자유학기제로 중간, 기말고사 없이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이때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놀기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매 순간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그렇다고 선생님 말을 듣고 열정을 발휘해서 하루 10시간 공부를 성공했다면 그때부터 재앙의 시작일 거라는 말도 했다. 안 하던 짓은 뇌가 저항하게 되어 있고, 기준이 처음부터 너무 높게 정해지면 그 이후에는 좌절감으로 힘들어하다가 포기하는 가장 쉽고 편안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니까.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찌질하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했다.


하루에 영어단어 10분씩 읽기로 하는 노력은 거창한 결단이나 의지나 노력 없이도 도전할 수 있는 일이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볼품없이 초라한 그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일 하게 되면, 애쓰지 않아도 지속하는 힘이 생길 것이고, 점점 시간을 늘려갈 수 있는 놀라운 일도 벌어질 거라고. 물론 많은 시간 동안을 그 사소한 노력으로 채워야 하겠지만... 그렇게 사소한 성취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이제까지는 하고 싶은 일만 본능에 충실해서 살았더라도,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뿌듯함으로, 결과적으로 성과를 확인하기 이전부터 이미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서서히 어떤 일을 해도 꾸준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온 몸에 새겨질 것이라고.

거창하고 비장하게 생각하지 말고, 릴스나 쇼츠 동영상 보기 전에 단어부터 10분 보는 습관을 들이는 식으로도 시작할 수 있으니, 가볍게 도전해 보라고.


그렇게 습관이 서서히 형성이 되고, 중 3이 되어 선생님을 다시 만나면 얼마나 서로 뿌듯하고 기쁘겠냐고. 지금 필요한 건 당장의 성과나 만족할 만한 성적이 아닌, 몇 번을 넘어졌음에도 일어나는 상처투성이의 포기하지 않는 사소한 노력과 찌질한 발걸음일 거라고.

그것이 이제부터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며 여러분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이자, 특권이라고.


그래서 당장 시작해야 할 습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라고 했다. 

모든 공부의 기본이 될 것이니, 말귀도 빨리 알아듣고, 남들보다 더 빨리 이해하면서 공부할 길이 열릴 거라고. 우리 학교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어떻게든 친해지라고.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찾아보면 의외로 책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잠재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거라고.

중3이 되기 전에 학교 진도 따라가면서 독서만 꾸준히 해도 대성공이라고.


수학은 당장 후행부터... 초등학교 수준에서 놓쳤던 것을 주워 담는다는 생각으로 학교수업 이해될 때까지 지난 과정을 철저히 개념학습 하고... 진도만 제대로 따라가도 일단 기회를 잡는 거라고...


영어는 학원을 다니면서 주워듣기라도 하면 효율적인 학습코스를 만났을 때 확실히 시간과 노력이 절약될 것이니 어떻게든 이것저것 많이 접해보라고. 그리고 이 시간에 미드, 팝송과 더불어서 조금씩 알려주는 학습방향대로만 하면 될 거라고...


추상적인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중 1 아이들에게, 집중을 강요하며 30분 이상을 쉬지 않고 떠들었다.


해답을 당장 찾지 못해도 적어도 아이들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유의미한 시간활용에 대한 노력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랐다. 

이후 자기소개 카드 작성 및 진단테스트를 받았는데, 나의 잔소리에 꿈에 대한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노력할 계기가 되어서 감사하다는 성숙한 소감이 있어서 놀랐다. 중3이 되어서 꼭 선생님으로 뵙고 싶다는 소감을 보고는 혼자 너무 감동했다.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앞으로 허락된 여덟 번의 만남에서 아이들을 향한 나의 진심과 응원의 마음을 조금씩 구체화해 갈 기대감에 설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삶과 그들의 개별적인 꿈은 모두 다 소중하니까.


표현하지 않아도 교육활동은 씨앗을 뿌리는 행위와 유사해서 그 성과를 바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성경에 나온 비유대로라면 모두가 씨앗을 품을 옥토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껍질을 깨고 나오라고 초대하는 여러 번의 도전과 자극이 계속되면, 단단한 땅도 씨앗을 품을 옥토로 각자에게 맞는 타이밍에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학생들이 준비되었거나 안 되었거나 교사가 좌절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할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62301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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