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 교수이면서 학습법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대니얼 T. 교수의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에 입각한 공부방법 책.
이전에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를 읽고 정리한 포스팅도 참고하시길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462559380
원제는 Outsmart Your Brain
out으로 시작하는 동사는 주어가 목적어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
A outrun/outweigh/outnumber B : A가 B보다 더 빨리 달리다/더 무겁다(중요하다)/ 숫자가 더 많다
outsmart …보다 더 똑똑하다, …보다 한 수 앞서다, …를 속이다
<듣는 것만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솔직히 말해보세요. 내가 추천한 학습 전략을 시도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그 횟수는 한 번 정도에 불과했다. 내 전략이 이상하게 들려서가 아니라 그 전략을 실행하는 동안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는 것이 문제다.
뇌는 효율성과 실제적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익숙함에 최적화되어 있다. 하던 대로 하도록 설계된 느낌이다. 그래서 안 하던 짓은 이벤트로 끝난다.
습관 형성 책에서는 뇌를 속이라고 말한다. 푸시업 한 번씩만 해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하면서 서서히 운동영역을 넓혀가는 것, 설탕을 줄일 때도 한 번에 줄이면 뇌가 저항하는 금단증상이 오니 한두 알씩 티 안 나게 줄이라는 조언도, 다이어트로 살을 급격히 뺐을 때 요요현상이 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의 습관을 지도하는 것이 어렵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어렵다.
내가 고등학교 있을 때 고1만 고집하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가장 힘든 학년이 고2였다. 절실함도 충전되지 않았는데다가 자기만의 행동방식이 고착되어, 교정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이해가 되었다. 두뇌를 뛰어넘어야 하고, 두뇌보다 더 똑똑하게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서서히 저항감 없는 반복의 과정을 거쳐야 습관형성이 된다.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교실밖 학습코칭에 집중한다. 수업은 그 학습코칭이 표면화되는 지점이고, 진정한 교육적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 후에 드러난다.
뇌에 새겨진 습관이나 행동양식을 리셋하고 새로 형성하는 과정은 인내와 기다림의 필연이다.
이 책을 읽으며 평소 나의 교육관이 뇌과학으로도 인증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많은 학습 팁 중에 새롭게 건진 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기뻤다. 오래간만에 책을 구입해서 보았는데 본전은 못 건졌지만, 그동안 해왔던 수업과 학습코칭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얻는 과학적 근거와 지지를 얻은 거라서, 그동안의 나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라서 기뻤다.
이 책은 학습자뿐 아니라 교사로서의 배움과 가르침의 관점도 제시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 모두에게 유용한 책이다.
몇 가지 팁만 살펴보려 한다.
<왜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
수업은 계획되고 체계적으로 조직되므로 학생은 하나의 개념을 20분 전에 교사가 말한 개념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연결을 놓칠 때 의미의 층위를 놓치게 된다.
* 수업들을 때
- 두뇌가 하는 일 : 친구의 말을 듣는 것처럼 수업을 듣기 때문에 내용 사이 심층적인 연결을 놓친다.
- 뇌 최적화 기술 : 교사가 체계적인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체계적인), 그리고 학생이 수업을 경험하는 방식(선형적인) 사이의 불일치에 대비함으로써 교사가 요구하는 연결을 완성하자.
말과 글에서 모든 정보를 다 전하지 않는다. 이미 이해하고 있는 전제된 사실은 생략하고, 이번 대화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도 암묵적으로 서로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과 글을 생략한다. 그런 계약 같은 대화가 성립을 하면 서로의 의도는 완벽하게 전달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몰이해나 오해가 생길 것이다.
교과서는 중요한 개념들을 압축해 놓고 있어서 문장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 인과관계와 맥락을 잘 파악하고 추론한다는 의미다.
현재의 발화나 수업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맥락 이해력, 즉 문해력의 부족을 들 수도 있고, 사전 지식이 전제가 된 위계가 있는 수업의 경우는 기본기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어렵지 않은 수업을 최상위권학생이 집중해서 듣는 것은 자신만의 맥락을 교사가 제시하는 맥락과 연결 지어 자기만의 지식체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표면적인 내용만으로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학생들은 실력이 표면적인 것에 머문다.
잘하는 학생들은 그 표면에서도 심연의 내용을 끌어올리는 공부력과 사전지식을 갖추었고, 그게 축적될수록 금광을 캐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수업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지만, 학생의 준비도에 따라서 수업에서 모든 것이 완결될 수 있다. 그런 완결을 이룬 학생들은 시험기간에 여유 있게 조감하듯 훑어봐도 최고 성적이 나오고, 표면적인 수업을 받아들인 학생은 시험공부에 끝이 없고, 성적도 노력에 비해 저조한 경우가 많다.
학생의 준비도는 기본기와 평상시 문해력이다.
내가 학교에서 학습코칭을 할 때 늘 강조하는 점이다. 거기다 습관형성까지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편안하고 행복한 공부가 시작된다.
<팁1 :수업에서 체계를 뽑아내자>
이상적인 수업에서 교사는 체계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여러분이 배울 내용은 이것입니다. 주요 결론은 X입니다. X를 지지하는 네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그 체계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학습목표를 구체화해서 수업 시작할 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예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 적어도 무엇을 배울지 알고 듣는 것과 그냥 되는대로 듣는 것과는 이해의 정도가 다르고, 뇌에 정돈되어 입력되는 정도에도 큰 차이가 난다. 예습은 수업이 이해될 수 있는 준비도까지만 갖추면 되는 거라서 상위권 학생일수록 예습은 목차를 훑는 정도로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교사는 수업내용의 큰 그림을 그려주고 나서 학생들이 그 틀을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지식체계로 채워가도록 도와야 한다. 게다가 목표의식은 학생들의 의욕과도 관계있다.
수업 체계의 상위 두 단계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자.
최상위 단계는 그날의 질문 혹은 가장 중요한 주제다.
두 번째 단계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수업의 체계는 중요한 핵심 사항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부요소로 나뉜다. 영어교과는 독해수준의 수업이 아니라면 기본부터 쌓아 올려서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이든 궁금하게 하는 것이 흥미 유발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수업시간의 발문은 교사의 설명보다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수업을 듣는 중에 전체 구성을 완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다만 큰 맥락에서 세부 사항들을 해석하고자 해야 한다.
숲을 보는 여유는 배경지식 등의 기본기를 갖춘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보편적인 문해력도 빨리 알아들을 수 있는 역량으로 작용하는 만큼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내용을 체계화하는 여유를 갖춘다. 그렇지만 아는 만큼 보이게 되어 있으니 준비도에 맞춰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아쉬움이 클수록 다음 수업 전 사전준비를 더 하면 된다.
혹 큰 그림을 파악하지 못하고, 수업의 내용이 모두 이해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냥 주워듣는 것도 의미가 있다. 빈 컵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뭐라도 채워 놓아야 다음 기회에서 이해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팁2 : 수업은 그냥 ‘듣는 게’ 아니다>
수업을 통해 학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학생은 자신이 듣는 수업 내용을 체계적인 구조로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가 버겁거나 따라가기 급급하다면 적극적인 사고는 사치이며, 체계적인 구조화도 무리다. 공부를 잘할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 교사팁
학생이 상위 단계의 연결고리를 놓칠 때 어떻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수업체계를 명시적으로 제시 – 수업 개요를 보여주는 것. 새로운 주제로 넘어갈 때마다 슬라이드 개요로 돌아와서 어디쯤 있는지 확인시키기.
중고등학생들은 최상위권을 제외하고 수업체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디쯤 와 있는지, 어떤 길을 더 가야 하는지, 수업 전후의 내용이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는지를 한 번씩 상기시켜서 뒤처지고 길 잃을 아이들을 한 번씩 챙겨가야 한다.
기본기, 맥락파악력, 문해력이 대체적으로 뛰어난 교육특구인 경우 교수내용의 공백을 굳이 메워주지 않아도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파악하며 수업에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학생들 입장에서 너무 뻔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흥미와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그러니 같은 내용이라도 듣는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교사의 티칭은 달라진다.
학생이 정말로 내용을 이해했는지 스스로 파악하려면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교사의 질문이나, 옆자리 동료와 30초 내외로 그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방법 등
진도를 나가기에 급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수업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수업 마칠 때쯤의 형성평가나, 학생중심의 협력학습도 확실한 이해를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아무도 내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안다. 내게 질문을 한 이에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나는 모른다. - 아우구스티누스
안다는 것은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읽을 때 우리는 안다고 착각한다
다시 읽기는 익숙한 느낌을 주어 자신이 내용을 숙지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러나 무언가에 익숙하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기억에서 떠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관련된 정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과 스스로 설명하는 것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수업에서 그러한 상황을 직접 보여주자.
고등학교 있을 때 거의 나 혼자 강의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협력학습이나 학생 발표수업을 할 수 있었을 때는 강의내용을 미리 화면녹화하여 예습처럼 학습하도록 한 후였다. 학습해오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은 협력학습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열심히 준비한 학생들은 가르치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들어서 아는 것은 대개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설명할 수 있어야 확실히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면서 그런 착각 속에 지내다가 시험 치고 나서 아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상처를 받는다.
<사소하지 않은 학생과의 만남>
교육자라면 학생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파악하기 위해 눈과 귀를(그리고 마음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학생이 찾아왔을 때, 말의 힘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자. 교사가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면, 아마도 옛 제자가 찾아와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러나 학생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던 대화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얼마나 상처를 쉽게 받는 존재인지도 항상 명심하자.
그래서 교사는 늘 긴장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을 대해야 한다.
<공부를 미루지 않으려면>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대한 과제를 작은 덩어리고 구분하도록 도와주자.
대규모 프로젝트인 경우 중간 마감을 정하자.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원숙제만 겨우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도 자신만의 시간을 활용하는 능력은 점점 마비된다. 공부뿐 아니라 모든 일은 잘게 쪼개어진 분철된 것에서 출발해야 완성을 지향할 수 있다. 물론 잘게 쪼개어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아무거나 먼저 시작하면 된다.
학생들에게 한자리에서 한 과목을 너무 오래 하지 말라고 조언을 자주 한다. 뇌는 지루함을 싫어하는 속성이 있으니 충분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물론 수능시험은 2시간 정도의 시간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완성된 집중력을 지금 이 순간에 시연해야 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해야 할 목록을 정해 놓고, 시간 배분까지 하다 보면, 불완전한 준비에서도 막상 시작하고 나면 목록과 배당 시간이 점점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조절되고, 그러다 보면 역량과 속도의 증가로 더 많은 것을 감당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분철된 학습의 축적은 어느 순간 맥락으로 연결되어 공부시간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이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좋은 성적 이전에 그런 과정을 이미 실현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적은 그런 과정 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결과다. 이런 과정에 다다르지 못한 학생들이 특히 부모님의 기대로 인해 좋은 성적을 얻으려는 과도한 부담을 갖게 되면 불안해지고 상처에 노출 된다.
시작은 초라하고 찌질해야 하는 것은 습관형성에 필연이지만, 공부하는 과정도 그러해야 한다. 그리고 마감시간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록만으로 플래너를 작성하는 것보다 시간배당을 하라는 것도 그런 의도다. 마감을 인식하면 집중력이 더 발휘된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셋>
학습은 우리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에 달렸다. 성공적인 학습에 대한 정의는 학교를 벗어나면서 바뀐다. 한 가지에서 최고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잘 할 필요가 있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절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던 시절이다. 성적이 충분히 많이 좋으면 나의 비주얼이나 불리한 조건들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애썼지만 그런 내게서 매력을 발견해 준 이성은 거의 없었다. 중 3때를 제외하고 나의 학창시절은 짝사랑으로만 점철되었다.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스스로 초라하게 느끼는 아이들이 축제 때나 학생활동에서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기준은 하나가 아니었다. 공부가 성실한 태도를 배우게 해주는 일종의 훈련이라는 요소까지 생각한다면 소홀히 할 수는 없겠지만, 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개별성과 장점 등을 가지고 있다. 그걸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지, 그 발휘된 능력이 어떻게 사회에서의 역할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지는 기성세대가 함께 해야 할 고민이다.
<학생들의 긍정적 마인드셋>
학생들이 학습의 적절한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성장이라고 받아들이도록 하자. 비록 그들의 성적이 높지 않더라고.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자. 이런 관계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편안함과 자신감을 느끼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교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교사는 교과학습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받은 관심, 개별적인 존중의 마음이 이후 학생들의 삶에 자신감과 확신으로 필요할 때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경험으로 아이들 세포에 새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불안을 잘 다스려야 공부도 잘한다>
불안을 관리하는 효과의 올바른 정의는 불안감을 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발전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특정한 신체적 증상이 반드시 긴장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흥분했을 때 똑같은 증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불안에 집중할 일은 아니다. 그저 해야 할 일, 특히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면 불안은 당연히 주변으로 밀려난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떨림이 있고, 그 떨림은 1교시 시작 전의 긴 침묵으로 더 심화되지만, 막상 시험이 시작되는 순간 그 떨림은 집중력으로 다 승화하게 될 것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될 것이라고 학생들을 격려한다. 그러면 좋겠다는 응원이 아니라 그저 사실이다.
불안함과 떨림은 설렘의 또 다른 모습이며, 희망을 아직 품고 있다는 증거다.
교사에게는 학생들의 불안을 치료하거나 해결해 줄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실은 그럴 능력도 없다.
교사가 아이들의 불안함을 함께 공감해 줄 수 있지만, 공부도,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도 학생들 스스로 해야 할 영역이다. 부모는 특히 그 경계를 인정하지 못해 좋은 의도와는 반대로 아이들이 자립해서 역량을 발휘할 시기를 자꾸 지연시키기도 한다.
“다정한 무관심”이 필요하다.
<공부 잘하는 선순환>
더 많은 흥미 – 더 많은 주의 – 더 나은 기억 – 더 높은 성적 – 더 강한 자신감 – 과제를 잘 해냄 – 미루기 감소 – 학업 따라잡음 – 더 많은 지식 – 더 나은 이해 (- 더 많은 흥미)
흥미 없이 시작해도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학습의 요소들은 선순환을 형성하고 있으며, 우리는 특정 단계에서 혹은 여러 단계에서 동시에 이 선순환에 진입할 수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선순환이다. 저자는 이 선순환을 선형적으로 단계를 정하지 않고 서울 지하철 2호선 라인처럼 순환하는 원처럼 제시했다.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발을 들여놓으면 회오리에 밀려들 듯 학업은 정상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