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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친해지려는 노력

by 청블리쌤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했다.

내 별명을 알고 있던 2학년 도서부 학생이 "청블리쌤"이라고 아는 척을 했다.

옆에 있던 2학년 학생이 내가 청블리쌤이냐고 놀라면서 3학년 선배한테 들었을 때는 되게 젊고 쑥스러움이 많은 분인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 왜 청블리쌤인지 모르겠다는 표정과 질문은 덤이었다.

생각보다 늙었다는 건 팩트라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고 "청블리"라는 별명과 매칭이 안 된다는 표정도 익숙해서 별 타격은 없었지만, 교무실에 올라와서 짝꿍 쌤께 그 이야기를 하니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계속 만나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거다.

그 한마디에 그냥 다 힐링이 되었다.

이런 일상적인 언어에 극찬의 메시지와 치유의 힘을 다 실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학생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거라는 걱정은 현실이 되어간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학생들과 놀아주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나랑 놀아주고 있다.

학원선생님이 내 기말고사 대비 동영상강의(얼굴 안 나오는 화면녹화)를 듣고 학생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아이들이 50대라고 하니까, 학원쌤이 놀라면서 30대 목소리인 것 같다고 그러셨다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30대가 무리수면, 적어도 40대라고 해주면 될 것을, 꼭 그렇게 팩트를 전달해야 속이 후련했냐?"라고 비교육적인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엊그제 2학년 학반에 보강을 들어가서 질문을 받았다. 그 질의응답 정리한 것은 내일 포스팅할 예정이다.

낯선 선생님의 제안으로 학생들은 질문지를 작성했는데, 어떤 학생이 질문 대신 자신의 슬픔을 적었다.

형워니가 군대가요ㅠㅠ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형워니 몬스타 엑스지? 나도 몬베베(몬스타엑스 팬클럽)다ㅋㅋ

그러니까 학생들이 모두 격하게 반응했다. 반백년도 더 살았던 선생님에게서 나올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집에 형워니 포카(포토카드)도 있다고, 둘째 딸이랑 함께 덕질하고 있다고 얘기했고, 개인적으로는 뉴진스, 그 중에 강고양이 팬이라고 하니까 아이들의 반응은 더 격해졌다.

그 학생의 엉뚱한 말에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반응했으면 아이는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교감이나 소통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애들 말로 "어쩔티비?"라고 반응했으면 조금은 덜 했겠지만..

어제는 내게 학습코칭을 받으러 온 3학년 학생이 침대에 누워서 노는 게 너무 좋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길래, 누워서 릴스나 틱톡 보다가 슬릭백 이런 거나 따라하지 말라고.. 하니까 바로 슬릭백 댄스를 흉내 내면서 옆의 친구들과 격하게 웃었다.

나의 이런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학생들은 놀라움으로 반응했고, 뭔가 모를 교감이 형성된 느낌이 들었다. 교사는 소통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문화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거였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공감하도록 너무너무 애써야 한다. 이왕이면 아이들의 문화를 아는 척해 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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