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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회귀 본능? 자녀와의 거리

by 청블리쌤

내가 살던 곳은 경기도 평택이었다. 고3 때까지 지내다가 이사한 경북 김천에서 재수하면서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고3인 나는 전학을 갈 수 없었고, 동생 둘은 전학을 했다. 친구들과의 강제 이별로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여동생은 두 달 내내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난 대구 시민으로 고향을 잊고 살고 있다. 이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서울에서 생활을 했을 거고, 새로운 공동체와 인맥에 적응을 했겠지만 중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인연은 이어졌을 거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까지 극복해야 하는 부담은 없었을 것이니.


큰딸이 수원에 정착하고, 둘째 딸도 서울로 거처가 정해지면 경기도로 가면 어떻겠냐고 아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평생 대구에서 살았던 아내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어차피 24년의 고등학교 교사 생활 끝에 인사규정에 의해 중학교로 내려왔고 내년까지 4년 만기를 채워도 중학교에만 계속 있어야 한다면, 지역을 옮겨서라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교사의 타지역 도간 교류는 일대일 교환 형태로 이뤄지는 데다가, 나는 부부 별거 등의 우선순위에 해당되지 않아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고민이다.


게다가 경기도의 그 넓은 지역 중 어디에 발령 날지 알 수 없으니, 젊은 시절도 모험을 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감당이 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다.


그래도 큰딸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너 가까운 곳에서 살면 싫지 않겠냐고?

그런데 좋다는 거였다.


그래서 너 동생은 가까이 있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혼자서 1-2년만 살아 보라고, 그럼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그랬다.

그 얘기를 둘째 딸에게 하니까, 언니는 혼자 살면서 자유롭게 할 거 다 해서 그런 말을 한다며 응수했다.



자녀가 독립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물리적 거리까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서울대 떨어졌을 때 통곡하셨던 어머니는 집에서 멀지 않은 지방거점대학에 다니게 된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셨고, 부모님은 결혼을 해서도 몇 년간 매주 집에 들어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매주 아버지가 목사님이신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는 건 지금 생각하니 부모님 입장의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먼 지역으로 갔더라면 그런 요구를 하지 않으셨을 것이니까.



난 부모님처럼 할 자신이(?) 없다. 큰딸이 내 생일날 본인이 선물인 것처럼 깜짝 쇼로 나타났을 때 난 반가움과 행복감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대학생으로서 바쁘고 힘든 시간을 억지로 내서 먼 길을 온 거였으니까.



요즘 특히 성인이 되고 결혼할 때까지 자녀와 지내는 건 축복 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근데 그건 거의 부모만의 입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큰딸은 여전히 엄마가 올라가서 며칠 더 있으려 하면 내려가라고 한다. 복층 구조이긴 하지만 원룸에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가까운 곳에서 자주 만나는 것을 딸은 원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가슴 아팠다. 독립을 보장해 준다고 그동안 너무 무심한 건 아니었는지 미안했다.



자녀가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녀 곁의 부모 자리는 넓고 크지 않다. 너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딸들의 삶에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 비워두어도 안 되는 그 균형점을 두고 평생 고민해야 할 부모의 숙명을 느낀다.



딸들 가까이 가는 길은 적어도 내게는 고향으로의 회귀지만, 아내에게는 평생의 삶의 터전을 떠나는 엄마로서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너무 어렵고 힘든 선택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너무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선택이 틀려도 실수조차 품어주는 가족의 관계성에 기대어 볼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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