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큰딸이 내게 물었다.
학창시절에 학년초의 담임쌤의 인기가 학년말까지 지속되는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빠는 인기 유지 비결이 뭐였냐고.
일단 실체 없는 인기에 대한 논증이어서 다분히 주관적이면서 착각의 영역이기도 하고, 소수의 학생들이 내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졸업 후에도 나를 찾아오는 것으로 인기가 있다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니 나의 답변도 객관화된 유의미한 결론은 아닐 것이지만...
교육대학원 멘토링 3차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할 학생들과의 소통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1. 소통은 진심이다.
엄격한 훈육 같은 말과 행동이라도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고, 일관된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안에 교사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편의성이 배제되면서 오로지 학생들의 성장과 교육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면 학생들도 그 진심을 느낄 것이다.
2. 소통은 연결에서 출발한다.
대학시절 과외의 시작은 무조건 학생과의 래포형성이어야 했다. 교사인 나부터 마음을 열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연결되면 원활한 소통은 물론 즐겁고 행복한 교육 활동이 이어질 수 있었다.
또 연결은 공감과 감정이입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의지와 조급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경청이 그 비결이다.
개별적으로 만날 때 그런 마음이 전해진다면, 학생들은 아무리 엄격하게 학반 운영을 해도 교사에게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3. 자주 소통해야 한다.
수업도 만남이고, 아침 시간도 학반 학생들과의 만남이지만, 개별적인 상담의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좋다. 모든 학생들이 대면상담을 다 편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림이 더 필요한 학생도 있으므로 소통과 만남의 채널을 다양화한다.
학급 상담노트, 꿈노트, 플래너검사 등의 채널과, 이메일, 구글클래스룸 등의 플랫폼에서도 간단한 댓글 소통이 가능하다.
학반 글 읽고 댓글달기 활동에서 반 전체에게 보내는 편지나,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긴 내 글들을 학생들에게 공유해서 댓글을 달도록 하면 그것 자체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별성이다. 개별성이 존중과 인격적 교육의 바탕이 된다.
4. 밀당도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친구같이 편한 관계로만 규정되면 반드시 모두 상처를 받는다. 교육 활동은 편하게, 원하는 바를 다 들어주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초반에 인기가 많다가 후반에 멀어지는 이유는 밀당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모가 뛰어난 교사라면 일단 시작부터 유리하다. 그러나 그건 자신이 페이스를 조절할 수 없는 타고난 속성이므로 밀당이 어렵다. 호감으로 시작해서 그 이상의 호감이 이어지지 않으면 관계가 시들해질 수 있다.
난 비주얼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했다. 심지어 첫 만남부터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깎고, 웃지 않고 정색하면서 분위기를 잡으면 학생들은 공포스러워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올 한 해 망했다고, 조폭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고, 너무 무섭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다면 이후 작은 미소 하나로도 엄청난 호감을 가져올 수 있다.
반면에 처음부터 웃으면서 잘해주기만 하면, 기대수준이 계속 높아지는 인간의 본성 상, 여간해서는 감동을 주기가 어려워지고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 달도 안 되어서 여고 반 학생들에게 손수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던 동료 남자선생님은 이후의 담임의 호감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뭘 해도 그 이상의 감동을 주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학년초에는 수업시간에도 웃음기 없이 엄격하게 학생들을 대한다.
내가 정말 몸이 아파서 병휴직까지 생각했던 어떤 해에는 초반에 웃어줄 여유도 기운도 없어서 나의 정색과 엄격함이 연기 없이도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아이들은 나를 많이 무서워했다. 학생부장쌤이 1학년 선생님 중에 내가 제일 무섭다는 학생들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몸이 회복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표정도 풀렸다. 아이들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아이들이 내게서 느꼈던 거리만큼 호감의 폭도 더 컸다.
지금은 나이 든 교사라서 굳이 그렇게 연기하지 않아도 시작부터 거리감이 형성되어 있다. 이젠 가까워지려는 나 자신의 노력만 남은 것이다.
젊은 교사일수록 거리 유지와 조절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5. 그래도 비주얼이 중요하지 않을까? 관계 유지의 노력!
유치원에서 예쁜 선생님을 대놓고 선호한다는 씁쓸한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학년일수록 외적인 것에 의해 첫인상부터 크게 좌우되는 것은 아이들의 추상화 능력이나 외적인 것의 이면을 보는 눈이 아직 발달단계에 있어서일 수 있다.
고학년 학생들에게도 첫인상이 좋은 것은 타고난 자산이자 장점이긴 하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이런 구절이 있다.
Mr. Wickham is blessed with such happy manners as may ensure his MAKING friends--whether he may be equally capable of RETAINING them, is less certain.
위컴씨는 친구를 사귀는 것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만한 유쾌한 매너를 지니게 된 축복을 누렸지만, 친구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도 동일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외모나, 첫인상이나, 유쾌한 성격을 갖춘 사교성이라면 친구를 누구보다 쉽게 잘 사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만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노력 없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히려 첫인상이 좋은 것은 그 이상을 기대에 계속 부응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후 누구에게나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 <라이커빌리티>에서 타고난 장점인 lovability는 오히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난 특출나지 않은 내 외모 덕분에 출발 수준이 높지 않아 이후의 사소한 교육 활동에서도 만족감을 주는 특혜를 누리지 않았을까 위로해 본다.
교생실습 나갔을 때, 키도 가장 작고 비주얼도 딸렸던 나는 실제로 여고 담임반 첫 만남에서 호감을 얻는 것에 실패했지만, 교사직과 인생을 걸고 나의 극강 "I"의 기질을 넘어선 절실한 노력으로 점심시간마다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애썼던 것, 이름을 외워 불러주면서 진심을 다했던 것이 결국에는 가닿았다. 아이들의 마음도 점점 호감으로 바뀌고, 교생 끝나고 나서도 많은 학생들과 손편지를 우편으로 주고받기도 했을 정도였다. 내가 답장으로 써서 우편으로 발송한 편지가 150통이 넘었다. 첫인상의 순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그 일 덕분에 난 학생들이 좋아해 주지 않으면 교사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을 극복하고 교사로서의 꿈을 확정하고서는 임용고시에 절실함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때 학생들에게 너무 고맙다.
6. 교사의 숙명인 짝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교사는 계산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을 조건과 자격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사말을 잘 듣고, 수업에 몰입을 하며, 열심히 하는 착한 학생들이어서 아껴준다면 초심과 초반의 긴장감을 점점 잃어가는 학생들을 인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알고 보면 초심을 잃는 것은 교사도 마찬가지다. 별 노력 없이도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뭐든 의욕을 보이는 초반의 긴장감에만 기댄다면 헤어지는 그 순간이 아름답지 않고, 그저 후련하기만 할 것이다.
교사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사랑을 한다. 한 번씩 간혹 들리는 메아리는 디폴트 값이 아니라 덤으로 얻는 보너스다.
혹 누군가 내게 인기의 비결을 묻는다면 난 그 이상의 사랑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쏟아부었다고 외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중학교에 와서 나이 차이가 더 벌어진 지금은 회수율(?)이 "0(zero)"으로 수렴해가고 있어, 인기라는 말도 민망하지만.
돌아오는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늘도 난 영원한 짝사랑을 한다. 영어로 짝사랑인 "unrequited love"도 그런 의미다. 준 것만큼 받지 못하는 사랑. 애초에 등가가 성립하지 않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