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고전소설을 너무 사랑하는 올해 대학생이 된 둘째 딸은 대학에서 독일 명작 베스트 교양강의를 들으면서 너무 행복해한다.
딸이 오늘 새벽 자신의 블로그에 <수레바퀴 아래서> 리뷰를 올렸다. 독명베(독일 명작 베스트) 수업으로도 들었지만, 수능 직후 자신의 인생소설이 되었다는 증거를 이렇게 올렸다.
"이 책을 지금 이 시기에 읽게 된 게 너무 행운이고
또 수업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게 대박대박 행운임
수능 끝나고 상처투성이로 갔던 여행에서 이 책을 샀는데
그렇게 그 수능으로 이 대학에 와서 이 책으로 수업을 듣고 치유가 된다는 게 참.. 인생은 묘한 거구나"
.
이 책을 다 읽고 수업까지 들은 당일 감격해서 스토리에 쓴 글이다
아프기도 하고 그게 돌고 돌아 치유되기도 하는 인생은 참 살아볼 만하다!!
내 개인적 기록을 위한 글이지만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 점을 꼭 기억했으면!!
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블로그의 몇 부분만 남겨 보려 한다.
초반에 한스가 주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내용을 봤을 땐 나와는 아예 다른 아이의 이야기를 읽는구나, 이 책으로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구나 했다. 한스는 중요한 시험에서 성공했고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읽을수록 가슴 아프게 공감되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이 무서운 것도 모두 같았다.
특히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고 노력했음에도 결국엔 공부에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다른 분야를 늦게, 서툴게 시작해야 하는 부분은 내 상황을 아프게 떠오르게 했다. 오랜 시간 공부만 했던 한스가 서툴게 기계공일을 시작했듯 나도 너무 늦었다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춤을 제대로 추기 시작했고, 한스가 이미 오래전 기계공 일을 시작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친구 아우구스트를 바라보듯 나도 춤을 전공해서 날아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딸은 춤 전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늦어버린 것에 대한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 납득할 이유를 찾기 위해 공부로 먼저 성취하기를 원했다. 재수까지 하면서 "하늘"을 바라볼 성적을 모의고사 때마다 얻어냈지만... 최후의 수능에서 평소와는 너무 동떨어진 성적을 받았다. 딸의 아픔이 묻어났다.
그래서일까 한스의 죽음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나는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니만큼 한스가 점점 어른이 돼가며 그 모든 아픔들을 이겨내는 흐름일 것이라 예상했다. 이 안쓰럽고도 아름다운 소년의 죽음은 마치 내 실패와도 같이 느껴질 것 같아서 너무 아플 것 같았다.
그러나 한스는 죽었다.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끼던 그리도 좋아하던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소년에도 어른에도 속하지 못한 채.
소년의 단계는 다시 돌아가길 거절당하고, 어른의 세계는 아직 그 자신이 견디지 못한 그 중간의 한스인 채로.
수많은 책을 읽으며 수많은 인물의 죽음을 읽었지만 그 어떤 인물의 죽음보다도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눈물도 났다.
문학에서의 죽음의 의미는 독명베 시간에 배워서 알게 되었다. 인물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죽어보고, 나는 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죽어봤고 그렇게 새 생명을 얻었으니 독자는 살라고.
인물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죽어보고, 나는 살라고...이 작품을 통해서 죽어봤고 그렇게 새 생명을 얻었으니 독자는 살라고...
딸은 대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으로 위로받고 있었다. 이미 딸의 마음속에 그런 다짐이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의 수업에 반응한 것이 아닐까 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나와 한스의 다른 부분이다.
나는 쓰라린 실패 이후 정말 끊임없는 위로와 그저 내 있는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다. 당시에 당장은 힘이 안 되는 것 같았어도 그게 지금 내가 다시 열심히 살아보도록 힘을 준 원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을 안고 갈 상처를 얻은 큰 실패를 했음에도 다시 또다시 살아보려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몸부림쳤던 건 정말 주위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격려였던 것 같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있다는 느낌은 그 무엇보다도 용기가 생기게 하고,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큰 절망에, 버팀목조차 없었던 아니 오히려 주위에 압박만 주는 사람들뿐이었던 한스가 삶을 조금이라도 이어나갔던 것이 기적이었음을, 견습공이라도 해보려 했던 결심이 기적이었음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느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소중한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고 한스 같은 사람들에게 버팀목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딸이 힘들 때 나의 글과 위로의 말이 딸에게 전혀 가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위로와 격려와 응원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딸이 이렇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교육은 결실을 거두려는 성급함이 아닌, 오랜 기다림을 각오하는 씨뿌림이다.
인간을 만나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원래 그러하다.
딸이 살아가면서 소중한 주위 사람들은 물론 한스 같은 사람들에게 버팀목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원 같은 메시지가, 이미 위로받고 힐링을 얻어 그 다음 레벨로 올라선 것 같아서 눈물 나도록 고마웠고, 딸이 자랑스러웠다.
딸은 내면의 고통을 이토록 잘 이겨내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교사로서 "아픔은 사명이다"라고 주장하고 다니면서도, 아픔을 거부해왔는데 딸과 함께 그 아픔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느낌이 들어서...
딸은 이미 그런 사명자로 서 있으며 주위 친구들에게도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딸은 무엇보다 "그저 내 있는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말의 위로를 느끼고 있어 감사했다. 이후의 성장과 성취는 덤으로 얻는 기쁨이지, 사랑의 조건이나 자격이 아닌 것이니까... 그게 복음의 본질이기도 하니까.
계속해서 돌아가는 수레바퀴 아래 서있는 듯한 삶을 사는 우리가 힘을 내어 잘 살아냈으면 하는 마음이 크고,
정말 숨이 차 수레바퀴에 깔릴 것만 같고 죽을 것만 같다면 그냥 수레바퀴를 부수는 쪽을 택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하
자신이 깔리는 선택은 절대 하지 마세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수레바퀴 따위 잠시 멈추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파이팅
딸 리뷰의 마무리 부분
아빠인 나에게도 응원의 메시지인 것 같아 힘이 났다. 수레바퀴 따위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 "아빠 그동안 고생 많았으니 조금씩 쉬어가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세요"라는 말로도 들렸다.
감동이 가시기 전 아픔을 통해 훨씬 더 성장한 딸의 블로그에 이렇게 "1빠"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내 블로그에 퍼가고 싶은 글이다. 조금만 퍼가도 되지?ㅋㅋㅋ
너가 문학에 빠져드는 것은 그 스토리의 흐름 때문이 아니라 너만의 공감과 너만의 생각으로 텍스트 그 이상의 스토리를 재구성하기 때문인 것 같구나. 너의 사유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고민, 주인공이랑 감정이입하여 죽음을 아파하고 애도한 후 미안한 마음으로도 너는 살아나는... 그래서 그 미안함이 주위 사람들에게 너 존재 자체로 위로와 힐링이 되고 있는 거겠지.
운명처럼 만난 작품, 수능 후 힘들 때 만나서, 그 수능으로 간 대학에서 교양수업으로 이 작품을 다시 만나 치유를 얻게 되다니. 다행히 너 주변에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중과 응원이 너가 힘들 때 너도 모르게 가닿았고 그게 너를 지금 full of life로 살아있게 한다는 깨달음도 아빠에겐 너무 감사한 메시지다.
견습생처럼 댄스에 매달리고 있지만 너만의 댄스로 날아오르렴. 비교우위의 행복이 아닌, 너만의 속도와 성장만 누리면 된다.
그 대학이 너의 꿈의 대학은 아니었지만, 꿈을 이뤄줄 대학이 될 거다. 학벌에 안주하는 토끼보다, 오늘도 행복한 성장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 거북이 같은 너는 결국엔 완주해낼 거니까.
과정은 행복할 만큼만, 결과는 어쩌다 보니.
자랑스러운 우리 딸... 이렇게 마음이 자라고 이렇게 감성과 배려 뿜뿜한 글을 써서 위로가 되다니ㅠㅠ 새벽부터 감동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겠네. 넌 순수한 유아,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아빠에게 기억될 뿐 아니라 그 순수함을 현실에서도 여전히 지니고 있으면서도, 차츰 나이만으로가 아닌 좋은 어른이 되어갈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이번 교생쌤들이 아빠한테 좋은 어른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 했던 편지글들이 아빠에겐 꼰대가 아닌 성장형 어른이라는 말로 들려서 벅찬단다. 영꼰이 많아지는 이 세상에 너는 벌써 주변 이들에게 공감과 배려와 힐링을 전하는 좋은 어른의 모습도 보여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문학일기, 독서기록 아니 너의 성장기록 계속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