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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ul 10. 2024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딸의 독서노트를 엿보다 2(향수)

둘째 딸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소설을 읽고 블로그에 올린 독서노트의 일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위로와 힐링의 소망을 담아 아래 공유한다.  

...

그르누이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에 대한 죄책감도 없다. 존재만으로 '악'. 악마 같은 그는 말 그대로 아주 악마 같은 재능을 가졌다. 그 재능이 너무나 탁월해서 읽으면서 긴장감이 거의 없었다. 그냥 그르누이가 의도하는 대로 사건이 흘러가겠구나 싶었고 그대로 됐다. 그래서 주인공에 대한 공감도, 이해도 안 됐다.

-


그래도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르누이가 끝끝내 자신을 사랑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냄새 없는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와 두려움을 느낀 그는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할 향기를 만들어내지만, 자기 자신만은 그 향기에 속을 수 없었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표면적 목표는 이뤘으나 본질적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그렇게 그의 인생은 끝났다.


이 대목은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기를 쓰고 애를 써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나, 댄서만큼 좋은 춤실력을 가진 나, 학점을 잘 받아 장학금을 받는 나... 그런 내가 되려고 노력했었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자신이 만족하는 모습이 됐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 한다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은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향수를 만들어내면 나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르누이와 같을 뿐이다.

즉 내가 사랑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겠다!라는 마음으로 하는 노력은 결국 그르누이의 노력과 같이 속이 텅 빈 허울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겠다 또는 조건부로 사랑하겠다 라는 선언과 같다.



이 공포로부터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정면으로 맞서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보다 훨씬 더 강한 의지였다. 왜냐하면 이 의지는 그냥 단순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위 두 본문은 그르누이가 자신의 목표를 세우며 한 생각들이다.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는 문장들인가? 사실 나도 이 문장들을 읽으며 열심히 살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는 느낌이라 메모장에 적어놨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달리도록 연료가 되는 문장들.



그러나 그르누이가 파멸하는 결말을 보고 생각에 잠겨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순서가 틀렸다.

그르누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



즉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잘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를 위해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함>이어야 한다. 

사실상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사는 듯하다. 사실 나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진 몰랐던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 나 자신을 얼마나 초라하게 느꼈었으며, 춤을 못 춘다 느껴질 때 나 자신이 얼마나 싫어졌던가. 하하



그러나 이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존재만으로 귀중한 한사람 한사람이라는 것.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연습하고, 운동하는… 그 모든 노력들은 나 자신의 가치를 검증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나 가치 있는 나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함! 이라는 것!!



만약 그르누이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향수를 만들겠다고 그런 끔찍한 짓들 따윈 하지 않고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좋은 일에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냥 그렇지 않았을까? 뿐이지 다른 책의 인물의 죽음처럼 딱히 안타깝진 않다. 본질적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죽은 그의 최후가 억울하게 죽임당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다. 

...




은근히 아빠의 댓글을 기대할 거라고 믿으며 딸 블로그 글에 바로 이런 댓글을 달아주었다. 

과연 내 딸이 쓴 글이 맞는가? 더 오래 글을 써왔던 아빠도 긴장하게 하는 글의 깊이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주인공의 "악"한 설정으로 인해 책을 읽을 때에도, 읽고 난 후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던 젊은 날의 나의 모습과 대비되네. 글은 유려한 글솜씨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으로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글의 내용을 떠나서도 깨달을 수 있었고...

거기다 자신의 삶을 녹여내어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가는 건... 길고 오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소수만 누리는 축복일 것인데... 그동안의 노력과, 노력의 깊이만큼의 좌절과 아픔이 아직도 너무 젊은 널, 그렇게 성장하게 한 거라는 생각에 감격스러웠고.

그리고 책을 읽지 않았을 사람들에게도 이런 위로의 메시지를 힐링으로 전할 수 있음에 놀랐다. 이건 아빠의 블로그에 인용해야겠다. 더 많은 이들이 그 위로와 힐링을 얻도록...

이 땅에 고통받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의식조차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에게 반드시 전해져야 할 메시지이기도 할 것 같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했다는 비극적 결말을 바라본 너의 외침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 같은 위로이기 때문이니. 

너의 말대로 잘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를 위해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함>이어야 하니까...

 

이 글을 쓴 너도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귀한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아빠의 사랑을 비껴갈 일은 없을 거라는 명확한 확신이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물론 사랑하기 때문에 너도 더 성장하려고 애쓰고, 엄마아빠도 더 성장하며 행복하기를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으니, 이미 시작된 행복의 행로에서 더 행복한 희망의 과정만 남았을 뿐...

이제까지 아픔으로 더 절절하고 절실하게 깊은 성장을 이룬 것처럼 아픔이나 삶의 굴곡조차 이후의 의미 있는 성장의 과정이 될 것이니...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연습하고, 운동하는… 그 모든 노력들은 나 자신의 가치를 검증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나 가치 있는 나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함! 이라는 것!!”

너의 이런 생각에 열렬한 지지와 변함없는 응원을 보낸다... 너가 내 딸이라서 이미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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