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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벽을 넘어서

두려운것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두려워하는 것중에서도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만들어진 두려움의 감정이 현실의 상황과 연결된 경우가 두려움의 강도와 난이도에서 다른 두려움에 비해 더 강했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들은 현실의 변화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위기관리를 하면 되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두려움이나 무기력감과 현실의 변화가 연결되면 트라우마 자체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 방법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변화만을 가지고 분석을 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두려움의 극복을 이룰수 없습니다. 


여기서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면, 부모로부터 정서적 무관심과 같이 있어야 할것이 없었던 애착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알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가족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족은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등에서 정서를 인정하거나 나누는 기회자체가 차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부분이 필요한지도 알지못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줄수 없고, 아이들의 정서적인 욕구도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권위자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가장 심각한 애착트라우마의 후유증이었습니다. 주변에 보면 부모님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나 권위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정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듣고, 자신의 정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할수 있는 경험을 갖는다는 것은 나중에 권위자와의 관계를 좋게 이끌어갈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국은 막연한 권위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의 고뇌와 두려움 걱정들을 알기에 좀더 쉽게 다가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운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 거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꺼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본인들의 어려운 감정에 대해서 전혀 자녀들에게 이야기 한적이 없고, 어려운 감정을 폭력적인 언어나 침묵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부모들이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사고의 범위 안에서 추측만을 할뿐이지요. 이러한 추측은 대부분 틀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한두번 이야기 하다가 대화가 안되었기 때문에 포기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할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는 것이죠. 


이러한 상황이 되면, 권위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분노만 남게 되고, 어떠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위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직장생활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직장상사와 좋은 관계를 맺을수는 없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해도, 어린시절부터 쌓아온 권위자와 소통하는 훈련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하라고 해서 실행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벽은 인생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벽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으면, 그러한 벽을 넘기란 불가능합니다. 눈에 보이는 두려움이나 불확실성이 아니라 마음 깊숙하게 존재하는 감정의 두려움을 볼 수 있을때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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