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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느끼지 않으려는 보호본능

본인은 자신의 수치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나요?

수치심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이 올라올때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수치심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숨기거나, 회피하거나 부정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넘어졌을때 얼른 일어나서 아무일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도 이러한 부류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한번 점검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간에 상견례가 있었습니다. 부모님들만 만나는 자리였는데, 신부쪽 부모님들이 본인들은 20번 이상 이사를 다녀서 이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 아이들이 결혼할때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전세금에 돈을 조금씩 더 보태서 집을 사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신랑쪽 부모는 그때 사업부도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혼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보태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랑쪽 부모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자신들의 가풍은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고 독립심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추가적인 경제지원은 해주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집을 사는 것은 없었던 일로 되었습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를 하시나요? 그럴수도 있지 라고 판단을 하시나요, 아니면 뭐 있는그래도 이야기 하지 왜 저런 거짓말을 할까하고 생각을 하시나요? 이러한 판단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둔간의 관계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답이 있는 상황은 아닌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수치심을 충분히 느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애써 그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탓하면서 수치심을 회피하거나 숨기는 경향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대처방안은 저의 삶을 더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단 수치스러운 감정이 들면, 그 수치의 감정을 충분히 느껴주어야 그 감정의 이유들이 하나둘씩 명확해 집니다. 만약 그 수치심을 애써 부정하거나 외면하면 그러한 수치심의 기저에 있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만약 수치심의 저변에 있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면 비슷한 수치스러운 상황을 또다시 경험하게 되고, 더 심각한 수치감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또 수치감을 회피하고 숨긴다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이러한 수치심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경우를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수치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두려움이나 고통의 감정도 그러한 감정들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게 되면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는 더 심한 두려움과 고통의 감정을 경험하는 인생의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감정은 우리가 인정해주고 느껴줄때 치유되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인생은 한층 더 성숙하게 됩니다. 수치심의 감정도 어떤 면에서는 마주하고 인정하기 어려운 상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서 인정해주고 느껴줄때 그 감정은 해소될 수 있고 동일한 수치심을 다시 경험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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