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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식에 기반한 삶

위기의식으로 움직이는 삶은 피곤합니다. 

전에 한번 저의 삶의 동기는 위기의식이라는 이야기를 한번 한적이 있습니다. 내 삶이 위기라는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저는 저 나름대로의 생존의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어떠한 생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시의 나의 지식과 경험에 기초해서 생존방법을 찾고 실행을 했습니다. 이러한 생존방법이 성공해서 어느정도 삶이 안정되었다고 생각을 하면 어느정도 긴장을 줄이고 살아가다가 또다시 위기의식이 느껴지면 생존방법을 찾곤 하였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은 중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희 집에서는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아무런 방향제시도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별 하는일 없이 하루는 보내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한번은 문득 주말오후에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두려운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제대로 밥도 먹고살수 없겠구나. 이런 위기의식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하는 공부였지만 그래도 노력을 하면서 공부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성적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처음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에 반응한 삶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대학입시때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향성이 문제였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어느분야를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원서는 쓰는날 고등학교 3학년 같은반 친구가 저에게 학과를 정했는지를 물어봤고 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자기가 전산학과 원서를 쓰러가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해서 그날 그 이야기를 듣고 과를 정하고 원서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주위에 이런것에 대해서 가족들 중에서 아무도 이야기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상당히 의문으로 남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말 가족들중에는 이러한 것을 이야기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전산학과를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합격하자 어느정도 위기의식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마 위기의식은 또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학공부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전산과에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이해도 잘 안되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이 1년 이상 지나자, 저는 이유를 알수 없는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찾아서 CT촬영도 해보고 다른 진단을 해도 어떤 특이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은 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무기력해지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신앙적인 경험을 통해서 저의 존재가치가 제가 무엇을 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열심히 노력해서 점점 학과생활에 적응하게 되었고 대학원을 입학해놓고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대학원 졸업후 민간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엔지니어로 일을 했었는데 회사에서 영업을 하는 것을 권유했고, 적응해보려 했지만 저에게는 맞지않는 옷같았습니다. 결국은 또다시 그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힘입어서 외국에서 일을 할수 있는 시험도 치르고, 회사를 한국에서 옮기는 시도도 병행했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정통부산하기관으로 직장을 옮길수 있었습니다. 위기의식은 어느정도 사그러 들었지만 직장생활에서 저의 직장상사와 맞지 않아 많이 힘든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다시 위기의식이 올라가고 있을 즈음에, 외국에서 일을 하기위해 지원한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어서 미국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직장을 옮길때는 저에게 많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외국에 살았던 경험도 없고 공부를 외국에서 한 것도 아니니 얼마나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겠어요. 60일 이상 설사를 하면서 힘들어했지만 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병원을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미련하게 지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낯선 환경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어려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과 처음이니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서 위기의식은 또다시 나타났습니다. 결국은 도망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프리카 근무를 자원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저의 위기의식에 기반한 삶의 패턴은 바뀌지 않았고 나중에는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제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고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할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증을 느끼면 그곳을 떠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이지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직장 상사와 이야기를 해서 시간적인 부분과 자원을 좀더 배분할 수 있도록 협의를 했으면 될 상황을 어렵게 만든 것이죠. 


사람은 자신이 무슨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어린시절 관계들로부터 만들어진 무의식의 핵심신념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해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삶을 살아보기 전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삶의 패턴을 이해하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지금 그 것들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린시절 건강한 가족관계를 통해서 건강한 핵심신념을 가질수 있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시행착오는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건강한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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