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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이어 쌓인 감정과 카르마

세대를 이어온 트라우마로 쌓여있는 감정들과 카르마의 연관관계

우리는 흔히 불교에서 업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를 다른 말로는 카르마라고 부르는데, 이 업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행도 하고 여러가지 참선도 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한 개인의 전생과 연관해서, 전생에 쌓은 업보를 현세에게 선행과 참선으로 풀어내야만 윤회의 고리를 끊을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업보를 통해서 고달픈 삶이나 병, 범죄, 잘못된 만남 등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하게되는 것은 결국 사람의 감정이 원인이 되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잘못된 사람에게 끌려서 잘못된 관계를 맺기도 하고, 분노나 슬픔이 너무 심하거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심해지면 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윗빠사나 명상은 불교에서 많이 활용되는 명상법중 하나인데, 감정으로 올라온 상태에서 이를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몸의 느낌이 아직 감정으로 발전되기 전에 

이를 세밀하게 느껴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집착없이 몸의 느낌을 바라보면, 감정으로 발전하기 전에 이러한 몸의 느낌이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감정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세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최근에는 조상들이 느꼈던 감정들이 자손들에게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마크 월린(Mark Wolynn) 박사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경험한 트라우마들이 몸에 영향을 주고, 이러한 특성들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트라우마 연구의 권위자인 베셀 반 데어 콜크박사의 "몸은 기억한다" 라는 책은 아마존에서 심리학 분야 책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랜시간동안 머물러 있으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도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몸에 트라우마의 영향이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흑인 노예들의 후예들이 조상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100년이 훨씬 지난 이후까지 어떻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조이 데그루이 (Joy a Degruy)박사의 Post Traumatic Slave Syndrome이라는 저서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서적인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가족 세우기(Family Constellation)에 참석하면 할수록, 가족안에서 만들어진 꼬이고 꼬인 감정의 실타래가 한 세대에서 해소되지 않으면 다음세대까지 연결되서 흘러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목도하게 됩니다. 누군가, 그 집안에서 그 감정적 짐들을 인식하고 해소하지 않으면, 그러한 감정적 고통은 다음세대로 전달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감정적 고통을 인식하고 바라보고 해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족들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세우기 워크샵을 통해서 사람들은 왜 자신의 가족에 그러한 감정적 짐들이 쌓이게 되었는지, 이해를 할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참여자들의 공감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대간에 이어지던 감정의 짐들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집안 전체에서 감정적 짐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수치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악인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수치를 느낍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수치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러한 수치감을 동생 아벨에 대한 분노로 변환시켜버립니다. 그리고는 그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 동생을 들판에서 죽여버리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분노의 감정에 제어되지 말고 이를 다스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욥이나 다윗처럼, 고통의 감정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고, 하나님께 그 감정을 가지고 나가서 해소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정면으로 그 감정으로 나아가서 해결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보들을 찾아보고 이해를 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에서 감정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카르마라는 것도 세대를 통해서 누적된 꼬이고 꼬인 감정의 실타래라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중년의 위기는 우리 집안에 쌓여있던 누적되고 해소되지 않았던 감정의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하고 소망하는 것은 저의 대에서 우리 집안의 감정적 짐들을 많이 해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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