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트라우마와 감정의 관계를 이해하면 잘못된 감정의 덫에서 벗어날수 있다
추가적인 감정조절의 내용을 다루기 전에 애착트라우마와 감정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관계를 알지 못하면 현실의 사건으로 인해서 제어할수 없을것 같은 강력한 감정을 느낄때 그 감정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면, 현실을 살아가면서 어떤 특정상황에 엄청나게 강력한 두려움이나 수치감등이 엄습해올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 두려움이나 수치감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두려움이나 수치감은 실질적이고 제가 어떻게 통제할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감정에 굴복해서 삶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수 있었는데도 후퇴해서 숨어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을 한적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어리석고 부족한 결정이었지만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제가 어찌할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제가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의 어리석은 결정을 후회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책을 오랜동안 했었습니다. 하지만 애착트라우마 (Attachment Trauma) 혹은 발달트라우마 (Developmental Trauma)라는 개념을 알아가면서 왜 그당시에 그렇게밖에 행동할수 없었는지 알아가면서 제가 경험했던 상처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고 나자신에 대한 자책을 그만두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나의 영혼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내가 견디어 왔는지,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떠한 방어전략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애착트라우마는 심리적 트라우마로 아이의 주양육자가 건강한 애착을 형성할수 있는 안전한 양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했을때 발생하는 트라우마이다. 이러한 애착드라우마는 심각한 정서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줄수 있으며 아이의 삶에서 후에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할수 있다. 이러한 애착 트라우마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는데, 부모의 무관심, 학대, 주양육자와의 이별, 정서적으로 부재하거나 일관적이지 않은 양육자로 인해서 발생할수 있다. 애착트라우마를 경험한 아이는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지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결여될 수 있다. 또한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데 어려움을 가질수 있으며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 그리고 정서장애와 행동장애를 유발할수 있다.
아이는 누구나 보호자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한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의 생존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죽음과 같은 두려움이다. 만약 주양육자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자신의 아이와 관계맺기를 두려워 하거나 하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이러한 관계에서 심각한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감정적인 경험만을 가지게 되며 자신의 부모가 상처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수가 없다. 결국은 자신이 잘못되어서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고, 모든 수치감과 두려움을 자신의 책임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부모와의 상황이 오랜동안 지속되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두려움과 고통의 감정을 연결하게 되고, 이러한 패턴은 아이가 자라서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람과 만나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든데 왜 그러한 관계를 만들겠는가? 이것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본인의 경험을 잠깐 나누어보면, 본인은 12월 30일이 원래 생일이지만 호적에는 2월 28일로 생일이 변경되었다. 필자의 부모님은 나를 1년 일찍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생일을 바꾸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거의 2살이나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학교를 다녀야 했고 학교에서 적응하는데 계속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결정을 하는 5살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울면서 학교에 가기 무서우니 안가겠다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거친말을 내뱉으면서 가라고 하면 가지 무슨 소리냐고 무섭게 소리를 지르고 윽박을 질러댔다. 나는 무서워서 방에서 맨발로 뛰쳐나와서 집밖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는 집밖의 굴뚝 뒤에서 무섭고 서러워서 울었던 기억이 4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나를 위로해준 사람은 우리집에서 아무도 없었다. 나의 삶을 돌아볼때, 이러한 기억은 이 세상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세상은 나를 해하려고 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다. 이른 나이에 학교를 가는것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무익한 일이었지만 부모들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추진되었고 나의 삶을 내내 힘들게 했다. 나중에 맬콤 글래드웰의 Outliers 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아이들을 일부러 학교를 1년 늦게 보내는데, 그것은 어릴때 학교를 1년 늦게 보내면 학교에서 더 뛰어날 확율이 높고, 그러한 자신감으로 인해서 인생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때의 결정이 얼마나 틀린 결정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것은 내가 세상을 대하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은 속에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막무가네로 몰아붙인 부모님들에 대한 뿌리깊은 분노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는 나의 무의식에 존재했고, 내가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가한 문제는 이러한 무의식의 분노들이 그 분노가 만들어졌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서 재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를 과거에 있던 일때문에 일어난 분노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늘날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상황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분노하고 두려워한다고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미국에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두려움과 수치감은 과거의 부모와의 경험과 사건때문에 쌓여있던 무의식속의 분노와 수치감 무기력감이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나의 감정과 만나야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떠나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그러한 감정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두려움에 압도되어서 도망가기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마주할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이 10년 이상이 걸렸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나는 나의 삶을 다시보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는 오늘 느끼는 나의 두려움이나 슬픔 혹은 수치스러운 감정이 어쩌면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나 상황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되었다. 그리고 어린 내가 경험했던 감정인지 아니면 나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감정일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본다. 그 감정을 바라봐 주고, 깊이 공감해준다. 네가 참 힘들었구나, 그러한 감정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아니면 우리 조상들이 이러한 수치감과 좌절감을 느꼈겠구나 하고 깊이 공감해주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깊이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느껴주면 그 감정들은 서서히 사라진다.
오늘 만약 두려움과 수치감과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에 압도되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그 감정들을 바라봐 주세요. 그 감정들은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누군가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를 애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그들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당신은 지금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