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집단 트라우마의 영향력

알지못하는 사이에 집단트라우마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어떤때는 내가 어떤 조건에 영향을 받는지를 확실히 알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는 내가 어떤 요인에 영향을 받아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아니 다르게 보면, 다른 삶의 방식이 있는것 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길만 있다고 알고 있고, 다른 가능성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은 자신이 오래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나라를 바꾸어 사는곳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인식할수 있는데, 처음에는 이러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괴롭고 힘들기만 합니다. 자신의 삶의 패턴대로 살았는데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로 갔을경우, 언어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에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서 적응에 실패하면 같은 나라말을 쓰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면서 결국은 자신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정된 삶을 살게 됩니다.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서 살면서 보게되는 현상을 보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보통 1세대는 타국으로 와서 언어등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한인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살아가게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업종에 근무를 하게 되고, 그나마 자녀들을 잘 교육한 사람들은 자녀세대에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올린 글에서는 한 집안에서 트라우마로 인해서 한 개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이것은 가족들이 경험했던 트라우마가 세대를 지나서 다음세대까지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 그 트라우마가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깨어나서 그 상처를 치유할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통당하면서 살아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의 가족시스템이론 (Family System Theory)에서는 가족투영절차 (Family Projection Process)를 통해서 부모세대의 정서적 문제들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대물림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의 대물림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들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서 의심해보지 않고 그대로 살게되면 끊임없이 트라우마를 대물림하게 됩니다. 감정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의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바라보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위빠사나명상이나 마인드풀니스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단지 가족내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이나 민족 그리고 나라들은 공통의 트라우마가 있고 이러한 트라우마도 어느 누군가 그 트라우마로 인한 감정의 고리를 인식하고 끊어내지 않으면 대를 이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의 패턴은 특징적인 행동패턴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행동패턴에 대해서 논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진행되고 이러한 논리적 이유가 모든사람에게 받아들여지거나 윤리의 문제가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한사람이 모든 공동체에서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들에 반기를 들게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기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집단트라우마의 대표적인 역사중에 하나가 미국에 살고있는 흑은노예의 후예들입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1619년 처음 노예거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링컨대통령이 노예제를 폐지했던 1863년까지 약 250년간 노예제가 미국에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 시대에 얼마나 흑인들이 고통당하고 짐승취급을 받았는지는 아마 인터넷 검색을 하면 자료를 많이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오랜시간동안 흑인들은 사회적 차별에 살아왔습니다. 일제치하에서 36년동안 고통당했던 한국도 그 고통에 치를 떠는데 흑은들의 고통은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고통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러한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트라우마의 고통은 미국에서 현재 진행중입니다. 범죄, 중독, 술, 깨어진 가정, 청소년범죄 등 이러한 고통속에서 수많은 흑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Post-Traumatic Slave Syndrome (PTSS)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조이박사(Dr. Joy DeGruy)는 이러한  노예생활에서 만들어진 트라우마가 오늘날 흑인사회를 어떻게 황폐화시키고 있는지 그의 저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흑인들이 자녀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고 아이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확인해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조이박사는 그러한 원인을 노예로 살때, 아이들이 백인 주인들에게 주목을 받게되면 다른 백인 집안에 팔려나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백인들 앞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칭찬하는 말에 인색해질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면서, 그 당시는 자녀들을 보호하는 좋은 목적에서 그러한 행동들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러한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패턴으로 수많은 흑인 어린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확신이 없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살아가면서 힘든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해소를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과거의 아픔을 끄집어 내는 것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뭐 좋은 기억이라고 그러한 것들을 끄집어내냐하는 시각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세월호나 이태원참사등에 대해서는 집단트라우마의 관점에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연구는 수많은 심리학적 성과들을 만들어 냈으며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기억속에 묻어두지 않고 연구하고 원인을 탐구함으로 해서 다시는 그러한 고통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하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책들도 활발하게 출판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트라우마로 인해서 고통받는 삶에서 해방되기를 소망하면서 글을 작성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애착트라우마와 암묵적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