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공신 책봉

by 춘향쌤

차가운 새벽비가 눈물되어 가슴을 저미며 내린다.


고통인지 울분인지 겨를조차 없이 이틀 전 자기 자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넋 나간 신하들 앞에서 세자가 되어 아비의 뒤를 따른다.


어마마마도 어딘가 계시겠지.


궁을 뒤로하고 대열도 무엇도 없이 100여 명이나 될까 하는 혼백들. 먹을 것이 있어 허기를 달래겠는가. 그 어떤 정신이 있어 뒤에 따르는 신하들을 살피겠는가.

임진강 나루에서 까닭 없이 임금이 울음 운다. 소리 없이 서러움이 번져 한 짐승처럼 우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라 짐승이 죽어가는 신음 같기도 하다.


배를 가라앉히고, 근처 인가도 철거하고, 한겨울을 나려 잎을 다 떨구어내며 가지를 휑하니 남겨두는 나무처럼 나루마저 끊어내는 아비.


강을 미처 건너지 못한 이 반이 넘는다. 세자 책봉도 받지 못한 임시인 서자로 그 무엇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저 눈물이 통곡이 소리 없이 가슴에 얼어붙고.


아비는 갑자기 양위를 하겠다며 요동으로 가겠다 하신다. 조선 팔도가 아바마마의 것이거늘 요동으로 가신다면, 이 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 18살인 내 것이 되는 것인가?


서자라서인지 그리도 차일피일 책봉을 미루시더니... 아닌 밤중에 떡이니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이 있어 잔치라도 열 것인가. 왜놈들이 남쪽을 점령하고 성난 불처럼 덮쳐오고 있거늘,


홀로 깃발을 들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리.


선조 파천 '역사저널 그날'


”전하, 전하의 높은 덕망과 지도력으로 왜놈들의 난동을 평정하온 지도 5년이 지나고 있사옵니다. 공신을 책봉하시어 널리 전하의 위엄을 만천하에 보여주심이 어떠하시 온 지 아뢰옵나이다.”


나는 사관이다. 일거수일투족은 반드시 기록해 내고야 만다. 왕이라도 결코 열람할 수 없다. 피곤하기 이를 데 없으나, 이 또한 후대를 위함이니. 어쩌면 몸속의 피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는지 모른다. 숨소리 하나 흔들리지 않으며, 손 끝하나 떨지 않고 그토록 무참한 말들의 칼춤을 무성영화처럼 적어갈 수 있었던 건 더 이상 뜨겁지 않은 생물이런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속히, 공신을 책봉하시어 널리 하해와 같은 은혜를 보여주시옵소서.”

“그러한가. 그대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지. 짐이 난리 전에 그토록 대비를 철저히 하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도 무리하게 대비를 한다며 막아서더니만, 왜놈들의 난리통에 짐이 직접 나서서 대명국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정녕 하늘은 짐을 도왔도다”


“지당하시옵니다. 전화가 진정된 것은 모두가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옵나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들의 공로도 있기는 할 터. 그럼, 경들이 공신 목록을 논의해 올려보도록 하오.”



생명이 생겨나 그것이 어디론가 나아가고자 할 때는 이익이 되는 먹잇감이거나 성파트너. 그러한 방향을 정하는 일이 머리가 하는 일이라면, 조선을 이끄는 이는 누구일까? 누가 나아감을 잘못 정해 전쟁이 났으며, 그 대비를 소홀히 한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상을 준 단 말인가? 당파에 서로 눈이 멀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뒤 조정에서,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며 풍신수길의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 하였습니다.(정사 황윤길)" 이를 듣고는 곧바로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 풍신수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부사 김성일)"


변덕스러운 봄바람이 흙내음을 일으키며 사초들 사이로 어지러움을 불어넣는데, 눈앞이 갑자기 메케해져 이름 모를 가슴 통증에 새벽 빗속을 뚫고 울음을 삼키며 정신마저 사초마저 혼미해져 구름 위를 도망치듯 임금을 따르며 임진강 나룻배에서 잠시 숨을 골라야 했던 기억이 충혈된 눈처럼 찌른다.


기계적으로 받아 적어 내려가던 손이 머뭇거린다. 분명 같은 날 같은 사람을 보고 온 것이며, 2년에 걸쳐 200여 명을 거느리고 일본에 다녀온 것이니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충분했을 텐데......




명의 허락이 없어 국경은 넘지 못했다.

이미 누르하치가 여진에서 몸을 일으켜 북방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터라 북방을 완전히 비우고 왜구를 대비할 수 없었다 하나, 참으로 길고 긴 7년이었다.


교토 코무덤 '부산박물관 임진7주갑 특별기획전 도록(2012)에서 전재'

길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하나 싸움에 물러섬이 없었는데, 누구를 공신으로 책봉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총 앞에 칼날 앞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데다 기근과 역병까지 겹쳐 얼마나 많이 죽어갔던가. 전리품으로 얼마나 많은 코와 귀가 소금에 절여져 검붉은 바다를 건너 생면부지의 일본으로 가야만 했던가.

이순신통제사 영감은 늘 장계에서 차디찬 바다에 잠겨있는 판옥선 밑바닥 노꾼 노비까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소상히 적어 그 공을 세세히 보고해 상을 받도록 했거늘. 다 공신인 것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쟁과 휴전 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