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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같은 내인생 Dec 22. 2024

여섯 살 우리 아이가 돌발성 난청을 진단받았습니다 2

우리 집 아픈 손가락의 기똥찬 성장기

"조기발견, 조기진단, 조기치료"

돌발성 난청의 3대 원칙이다.


그중에서도 ‘조기 발견’은 특히 중요하게 강조된다고 한다.  돌발성 난청의 조기 발견은 의사의 몫이 아닌 환자 자신이 판단해야 할 부분이며, 늦어도 발생 후 일주일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돌발성 난청 환자의 1/3은 정상 청력을 되찾지만, 1/3은 부분적으로 회복하여 40-60dB 정도로 청력이 감소하며, 나머지 1/3은 청력을 완전히 잃는다. 처음에 생긴 난청이 심할수록, 어음 명료도가 떨어질수록, 어지럼증이 동반된 경우일수록, 치료가 늦은 경우일수록 회복률이 낮다.  

"원인이 뭔가요? 갑자기 이럴 수도 있나요? 여섯 살 아이에게도 돌발성 난청이 올 수 있는 건가요?"
"아직 정확한 원인이 없어요. 수족구와 독감에 연이어 걸렸었고, 면역력이 떨어져 있을 때 바이러스가 몸에 제일 약한 곳을 공격했을 건데 그게 귀였던 거죠. 소아에게 돌발성 난청은 드물기는 해요."


정신없이 쏟아내는 내 질문에 의사는 아직 어린 내 아이가, 그리고 질문 내내 그렁그렁한 채 맺혀있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발견 일주일 이내의 적절한 치료라는 것이 일단 시작됐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 원인이나 증상에 따라 고막에 스테로이드를 직접 주사하기도 하는데 우리 아이는 이제 6살. 나이가 너무 어려 주사는 힘들다고 했다.  이틀간 입원하며 검사를 하고 스테로이드 복용 후 다시 한 청력검사에서 변화는 없었다. 일단 일주일치의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퇴원을 했다. 일주일 후 다시 외래에 방문해 청력검사를 했지만 우리에게 기적은 없었다. 20%밖에 남지 않은 아이의 청력은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일주일이나 먹었어도 돌아올 줄 몰랐다. 

"청력에 변화가 없네요. 이제 인공와우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발병 후 2년 이내에 인공와우 수술을 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고, 그 이후로는 효과가 점점 떨어져요. 밖에서 우리 간호사가 자세히 설명해 드릴 겁니다."


입원 시 만났던 의사와 다르게 이비인후과 난청 분야에서 명의라 불리는 오늘의 담당의사는 채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 할 말만(그게 본인이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겠지만) 간략하고 건조하게 이야기하며  진료를 끝냈다. 그렇게 찰나의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를 따라 상담실로 들어갔다. 

"인공와우는 한쪽에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2년 이내에 수술을 하는 게 효과가 좋습니다. 귀 뒤쪽을 절개해서 인공와우 장치를 두개골에 고정한 후 달팽이관에 전극을 삽입해요. 삽입된 전극이 정확히 위치했는지 전기 신호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후 절개부위를 봉합합니다. "



설명을 듣고 있으면서도 이게 도대체 갑자기 다 무슨 일인건지, 우리가 여기서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건지 간호사의 말은 사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가 이 상황이면 선생님은 어떤 결정을 하시겠어요?"


그 순간 진심으로 그게 궁금했다. 나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런데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글쎄요. 선택은 부모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제 아이라면 수술은 안 할 것 같아요. 인공와우가 최선이며 최후의 방법이긴 하지만 수술 후 적응까지의 시간도 아이가 견뎌내야 하고 그래도 아이는 한쪽 귀가 정상이니 지금부터 잘 적응하며 지낼 수도 있으니까요. 저라면 수술 안 시킬 거예요"


다음 진료일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것도 모른 체 언니 없이 그저 엄마 아빠를 독차지한 것이 마냥 기쁜 여섯 살 꼬맹이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위해 무슨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수납을 하면서 의무기록실에 들러 그간의 진료기록을 발급받아 왔다.

그 기록을 들고 소아 난청으로 이름난 명의를 찾아 종합병원과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을 찾아 다녔다.

어떤 의사는 이전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인공와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고, 어떤 의사는 보청기를 사용하며 지내다가 아이가 자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수술을 결정하라고 했다. 또 다른 의사는 어릴 때 한쪽 청력만 떨어졌으니 정상 청력을 가진 귀를 꾸준히 검사하며 적응해 나가면 된다고 했다.

모든 의사의 의견이 같았다면 좋았겠지만, 각기 다른 말을 들으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진료를 거듭할수록 혼란은 깊어졌다.


“수술은 아프잖아. 엄마, 나 지금 엄마 말 되게 잘 들리는데, 수술 안 하면 안 돼?'

라며 처음엔 나를 설득하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

“나 수술 안 할 거야. 이제 병원도 그만 가자.”

라며 단호히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수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단어만으로 공포를 느끼는 여섯 살 아이가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우리가 병원을 다니며 고민하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언니보다 더 예민하고, 예쁜 걸 좋아하는 이 아이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치에 민감해하지 않을까? 곧 학교에 가는데,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떠오르는가 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게 뭐가 대수야. 그래도 양쪽 귀로 온전히 잘 듣는 게 더 중요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동안 수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수술 후 1년간의 재활이 필요하다는 말에 다시 고민이 깊어졌다. 아직 어린아이가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결국 많은 고민 끝에 우리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고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수술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아이와는 달리, 이 결정이 과연 아이를 위한 최선이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왜 하필 이런 지독한 바이러스에 아이가 공격을 받아 이런 결과까지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리고 서둘렀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아이에게 닥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어느새 나에 대한 원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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