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픈 손가락의 기똥찬 성장기
아이도 남편도, 그리고 가족들조차 몰랐겠지만 나는 자책의 시간을 꽤 길게 견뎌야 했다.
그런 순간들은 아이가 일곱 살이 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매년 찾아왔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작성하게 되는 "학생 기초 자료 조사서"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정보를 적고 당부 사항을 작성하는 칸에 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써야 했다.
"여섯 살에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아 오른쪽 귀의 청력이 20%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함은 없으나 간혹 잘 못 알아듣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학교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생기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서 청력 검사를 할 때면, 결과를 확인하며 아이가 정말 안 들리는 게 맞는지 병원에서는 여러 번 되물었다.
다행히 평소에는 별다른 불편 없이 잘 지내는 아이였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아... 맞다. 안 들리지.' 하는 생각에 괴로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생각은 며칠씩 나를 힘들게 했다.
어쩌다 TV에서 청각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인공와우를 소재로 한 웹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런 이야기를 본 지인들이 건네는 안타까움과 위로의 말도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런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사실 여전히 지금도 쉽지 않다.
얼마 전 감기 때문에 찾았던 동네 새로 생긴 이비인후과에서 청력 검사가 가능한 장비로 검사받을 기회가 있었다. 정상인 귀의 청력 상태를 확인했는데, 8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청력이 20%만 남아 있었고, 다른 쪽 귀는 정상이었다. 의사에게 여섯 살에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은 이야기를 하자, 이제는 인공와우나 보청기는 의미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대신 정기적으로 검사하며 정상인 귀를 잘 관리하고, 짠 음식을 피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술과 담배를 멀리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날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이가 처음으로 물었다.
"엄마, 난 왜 오른쪽 귀가 안 들리게 된 거야?"
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었다. 나는 솔직하게 과정을 이야기해 주며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지금도 사실 혼란스러워. 가끔은 그때 인공와우 수술을 해서 네가 양쪽 귀로 다 들을 수 있게 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수술하고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장치 때문에 네가 상처받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었어. 그래서 네가 성장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어."
내 말에 아이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 엄마랑 아빠가 수술을 결정했으면, 난 오히려 엄마 아빠를 원망했을지도 몰라. 난 지금 잘 지내고 있는데, 그 장치 때문에 잘 지내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 내가 인공와우에 대해 찾아봤는데, 난 참을성도 없고 인내심도 없어서 재활도 못했을 것 같아.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 장치 때문에 소심해져서 지금처럼 밝은 성격으로 크지 못했을 것 같아."
아이의 대답은 나를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여섯 살에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았던 내 아이가 이제 중학교 1학년, 열네 살이 되었다. 한때는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졌던 아이가 지금은 밝고 평범하게 자라준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도 괜찮을까 걱정했던 내 우려와는 달리, 아이는 K-pop 노래를 부르고 아이돌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며 또래 아이들보다도 더 활기차게 성장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방과 후 수업으로 방송 댄스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흥미를 보였고, 고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댄스 학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학원에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학교 체육대회와 축제에서 댄스부의 일원으로 무대에 올라 많은 아이들 앞에서 공연도 했다. 또래 아이들이 잠깐의 취미로 끝내는 것과 달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춤을 자신의 꿈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나도 아이의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가끔 나와 투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며 우리 관계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가 지금까지 밝고 건강하게 자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내는 모습은 내게 가장 큰 위로이자 기쁨이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더 자라면, 언젠가 내가 했던 선택을 원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지난 시간 동안 아이는 내 걱정과 달리 하고 싶은 것을 불편함 없이 해내며 잘 자라주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혹시라도 아이가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좌절하지 않도록 곁에서 응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가 좌절한다면, 그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비록 한쪽 귀는 여전히 들리지 않지만, 아이의 삶은 그 무엇도 부족하지 않다. 아이는 지금도 춤을 추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이는 지금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양쪽 귀로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의 웃음소리, 춤을 출 때 빛나는 눈빛, 그리고 "엄마, 나 잘하고 있지?"라고 물으며 기대어 오는 아이의 따뜻한 온기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아이가 그토록 사랑하는 춤을 추며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자 삶의 이유라는 것을.
브런치에 합격하고 1편을 쓴 뒤, 2편을 쓰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이 글을 발행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많았지만, 내가 첫 글감으로 선택한 이야기를 끝맺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설프게나마 2편, 3편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 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그때의 순간들이 떠올라 잠시 힘겨웠지만,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다시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읽고 쓰는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다짐해 봅니다. 약해지지 말고, 계속 읽고 쓰는 사람이 되자고. 나와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도 작은 위로와 용기가 닿기를 바라며,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