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오전에만 일보고 퇴근한다던 남편은 감감무소식이더니 밤 9시가 되기전에 귀가를 했다. 수능을 끝낸 재수생 아들을 둔 친구가 속상하다며 술친구를 찾기에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올해 수능이 국어가 어려웠다나봐 그녀석이 국어를 망쳤다네. 일년 재수한거 다 날아가게 생겼대. 반수할 생각인가봐. 많이 속상해 하드라고..
그나저나 여보, 달님이 윗니 언제뺐지? 한 석달 넘지 않았어? 아직 영구치 안나왔지? 그게 알아보니까 영구치가 없는 애들도 있다던데..
뭐라? 이 양반이 술 취했나. 남의 집 아들 수능 망친 얘기로 시작하다가 갑자기 우리 딸래미 영구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 황당한 끝맺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남편을 다그쳤고, 이미 앞니유치를 다뺀 상황에서 영구치가 안나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며 애꿎은 남편에게 화를 내며 씩씩댔다.
남편에게 화를 낸다한들 이미 빼버린 달님이의 앞니 두개는 돌아오지 않는데, 아 이럴줄 알았으면 큰애때처럼 꼬박꼬박 어린이치과다니면서 치아상태 체크하면서 뺄 걸, 아니 영구치가 없는거 같으면 앞니는 도대체 왜 흔들렸을까 흔들리지 말고 그자리에 꼭 붙어있지. 별게 다 원망스러웠다.
다음날 바로 딸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치과에 갔다. 파노라마 사진이라는 걸 찍으면 영구치 유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두시간의 긴 기다린 끝에 선생님에게서 아이의 윗니는 영구치가 내려오고 있으니 걱정마시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뒤이은 선생님의 뜻밖의 말씀.
"그런데, 딸래미, 왼쪽 두번째 송곳니 영구치가 없네요, 그건 알고 계셔야겠어요"
영구치 없는 아이도 있다던 남편의 말이 사실이었다니. 그리고 나는 그자리에서 줄곧 잊고 살았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내 왼쪽 두번째 송곳니가 유치라는 사실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 줄곧 그 이가 유독 작은 것이 궁금했었는데 언젠가 치과에 가서 알게되었다. 그 이가 유치라는 것을. 하지만 영구치가 없어서 유치를 쓰고 있는것인줄은 몰랐다. 이제서야 모든 의문이 풀린셈이다.
선생님께 저도 같은 자리에 유치가 있다고 말씀드리니 달님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쾌하게 웃으셨다.
"하하! 딸래미 엄마 닮은거였네~!"
이런 것까지 엄마를 닮다니 닮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딸이 나를 닮으니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정말 유전자의 힘이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