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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k Jul 07. 2018

#5 : 퇴사와 자존감 사이

패션으로 알아보는 자존감 이야기

아무리 자존감이 높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자존감이 서서히 수면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때이다.


1. 땅에 떨어진 자존감은 패션에서도 드러난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자.


필자의 경우 회사에 다니는 동안 옷 차림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첫 회사를 제외하고 양복 차림이 아닌 캐쥬얼 차림을 허용하는 회사에서 꾸준히 근무해왔던 것이다. 특히나 스타트업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스타트업이라면 '회사 로고가 박힌 후드'라는 신념 하에 언제나 똑같은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으며 출근하곤 했었다.(페이스북과 구글을 보아라! 그곳 컴돌이들은 항상 후즐그레한 회사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고 다니며 컴돌이 티를 팍팍내곤 한다.) 이 습관은 다음 직장으로도 이어져 나의 출근 패션 컨셉은 언제나 회사 로고가 박힌 후드티(혹은 반팔티)와 청바지였다.

저커버크 형님의 한결같은 후디. 모두 본 받도록 하자!


퇴직을 하고 도서관을 가는 첫 날, 왠지 모르게 직장인처럼 입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직장인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이 내가 백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릴까봐 두려워졌기 때문일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정말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회사 로고가 박힌 후드티와 대형 백팩을 떳떳하게 멘 나의 모습은 나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 너무 심한거 아니냐며 핀잔을 줄 정도로 나는 회사 로고 패션 덕후였다. 그와 더불어 남의 시선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왜냐고? 어차피 나도 다른 모든 직장인들처럼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버는 독립적인 인격체였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들이 나를 대학생이나 취준생으로 볼지라도, 나는 직장인인데 꿀릴게 없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보다 해외 출장도 많이 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떨어진 자존감을 붙들길이 없었는지 나는 결국 샤오미 비즈니스 백팩을 사게 되었다. (이 백팩은 정말 많은 직장인들이 메고 다니기 때문에, 혹시나 직장인인 척 하려는 분이 있다면 이 백팩을 사면 된다!) 샤오미 백팩과 반팔 자켓을 조합하니 캐쥬얼한 패션으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의 향기가 조금씩 풍기게 되어 최근에는 이 조합으로 도서관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땅에 떨어진 패션에 대한 자존감을 되찾을 길은 없어보인다. 물론 내가 나만의 스타트업을 만들어서, 로고를 딱! 만든다면. 그 로고를 박은 티를 1년 내내 입고 다닐 자신이 있다. 현재로서는 어떤 조직에도 속해있지 않고, 특별히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도 않으니 차마 패션에 대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인다.


2. 내 일에 집중하자


이미 수면에 가라앉아 버린 나의 패션에 대한 자존감을 다시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취직을 다시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다만 나는 7월 중순부터 약 6개월간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닐 예정이기에 올 한해 동안 패션 자존감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패션에 대한 자존감을 제외한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방법은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회사를 다니며 패션에 무감각했던 이유는 회사를 다니면서 중요한 것은 일을 잘하는 것이지, 그외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여기서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회사에서 옷 잘입고 다니는 것도 일을 잘하는 것에 포함된다고. 당신이 외부인을 항상 만나는 영업직이라면 찬성 해줄테다. 그리고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그렇다면 그것도 인정해주긴 할테다. 오래된 회사들이야 할일없어 딴생각하는 높으신 분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회사 내에서 매일 엑셀질이나, 컴퓨터 모니터만 봐야 하는 직무라면 별로 상관 없다고 본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회사 프로세스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라던가, 오늘 어떤 업무를 할지에 대해서만 집중했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가는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츄리닝을 입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츄리닝을 입으면 뭐랄까 회사보다는 운동하러 가는 느낌이기 때문에,. 나는 츄리닝은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입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회사 로고가 박힌 옷을 입는 것은 가장 좋은 옵션이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드러내고, 편하고,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옷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을 넘지는 않기 때문에.


내 일에 온전히 집중하면 다른 일에는 무감각해진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건 별로 중요치 않다. 내 앞에는 해야할 일이 놓여 있고, 그걸 가장 잘 처리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해야할 일임을 알기에....

결론은, 내가 지금 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앞으로 좀 더 집중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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