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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k Jul 12. 2018

[북리뷰]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유튜브 영상도 있으니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https://youtu.be/kvWBETKzluM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82년생 김지영


최근 불거지는 성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82년생 김지영"을 드디어 읽어보았다. 이 책은 남성 중심 가치관이 팽배했던 19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한 여성의 일대기이다. 혹시 "남성 중심 가치관"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지 말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였다는 점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가령 2008년까지 유지되었던 호주제라던가, 회사의 고위직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살펴보면 남성 위주의 사회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자로서 이 책을 읽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그래서 남자로서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과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 공감 포인트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이 책의 후반부인 출산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자로서 출산으로 버려야 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남자로 살다보면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신체적 고통에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남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고통들이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 찾아온다는 마법의 날들 그리고 출산을 준비하는 그 오랜 기간 동안에도 신체적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은 막연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이 고통들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출산의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내가 겪는 고통은 크게 느껴지는데 반해 남들이 겪는 고통은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출산이라는 과정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성도 언젠가는 함께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었고, 현실성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비공감 포인트


그와 동시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존재했다. 여자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서 공감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설정이 너무 과도해 공감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청소년기에 나왔던 막내 아들에 대한 설정이었다. 김지영씨의 가족은 2명의 여자와 1명의 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남자 아이는 흔히 막둥이라 불리는 아이였다. 이 막둥이는 집안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응석받이로 묘사된다. 남자이기 때문에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으며, 먹고 싶은 것도 가장 먼저 먹어야 하는 그런 철없는 존재 말이다. 다만 이렇게 묘사되는 이유가 단순히 그가 남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막둥이 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집안의 막둥이로 자란 남자아이인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거리를 사러 슈퍼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먹을 거리를 자전거 핸들바에 걸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리고 밤에는 쓰레기 봉투를 버리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우리집에도 여자인 누나가 한명 있기는 했으나, 적어도 손에 물을 묻힌 적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역시 80년대 생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여자인 친구들 중 집안 일을 많이 했던 친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이 책이 과연 82년생 김지영인지, 62년생 김지영인지 헷갈리기는 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부분 역시 도저히 공감이 되지 않았다. 특히 회사의 여자 팀장이 회사 막내인 주인공에게 수저를 놓거나 커피 타는 일을 금지시키는 장면이 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일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이런 일을 금지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여자 팀장은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남자는 시키기 전에는 수저를 놓거나, 커피를 탈 생각도 하지 않는데 여자인 주인공은 이런 잡다한 일을 알아서 한다며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잡다한 일을 알아서 한다니... 대관절 수저를 세팅하거나, 커피를 타는 것에 성별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아, 이 부분 역시 필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신입사원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데...필자의 신입 사원 시절을 한번 돌이켜보도록 하자. 필자가 배정된 팀은 약 20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필자는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우리팀 사무실 자리 끝 쪽에 비치된 드랍 커피 머신을 발견하게 된다. 며칠 근무를 하며 알게 되었던 사실이지만, 그 드랍 커피 머신은 우리팀 과장님이 팀원들을 위해서 구비한 커피 머신이었다. 우리팀 사무실은 아침마다 은은한 드랍 커피 향으로 물들어 있었고, 나 역시 아침마다 퍼지는 은은한 드랍 커피의 향이 좋았다.


한국 사회는 으례 신입사원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기 마련이다. 커피는 과장이 타는게 아니라, 신입이 타는 일이라는 무언의 압박 말이다. 물론 그런 무언의 압박이 존재하기도 했겠지만, 아침 사무실에서 퍼지는 커피향이 너무 좋았기에 아침마다 내가 커피 팟을 닦고, 드랍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 과장님은 난처해 하시는 듯 하셨지만, 고맙다는 말로 나의 커피 업무를 컨펌해주셨다. 매주 수요일 점심마다 펼쳐지는 팀 회식에서 수저를 세팅해 놓는 것은 신입사원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담당해야 할 업무 중 하나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들은 없어져야할 인습이라고 생각한다. 수저를 놓거나, 커피를 타는 일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떄문에...아 물론 커피 타는 것처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상관이 없다. 나도 좋고, 팀원들도 좋다는데 마다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이렇듯 여자와 남자를 과도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설정은 책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여자들이 겪는 수많은 불편함에 대해서 조금씩 알기 시작하는 순간, 저러한 과도한 설정으로 인해 앞에서 묘사된 그런 불편함들이 너무 과도하게 묘사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전개, 하지만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다.


소설의 빠질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예상치 못한 인물의 죽음과 같은 반전이라던가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끔 하는 극적 갈등이 아닐까. 혹시라도 소설의 재미를 예상치 못한 전개방식이나 최고조에 달한극적 갈등에 두고 있다면 "82년생 김지영"은 당신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소설은 너무나 예측 가능한 사건들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쯤에서 이런 얘기를 하겠다라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조금은 아쉬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이 책 중후반부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는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둘은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는 톱니바퀴 관계이다.


우리는 태어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이 사회의 규범과 제도들을 익혀간다. 이미 정해진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받는 교육을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난 우리는, 그 사회가 지닌 공통의 가치관을 무의식적으로 따르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가치관을 우리는 옳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옳다고 여겼던 가치관들이 무조건 옳지는 않다는 깨닫게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 계기는 주로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들은 나와 다른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다른 가치관을 형성해온 사람들일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세계가 점점 좁아짐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은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과 여(혹은 여와 남)로 분리된 세계에서 남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자신의 대척점에 있는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 그리고 여성에게는 그동안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채 홀로 간직해왔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 이 두 가지 측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발전하는 이유는 으례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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