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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k Feb 19. 2016

국회의원과 영업지원은 다를바가 무엇인가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예전에 친구와 이야기 하던 중 약간 황당한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의 학교에 국회의원이 찾아왔는데, 국회의원 옷에 달린 배지를 보자 머리가 절로 숙여지더라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을 당시엔 굉장히 어이가 없기는 하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제로 국회의원이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머리를 숙여 그들에게 악수를 청할 것이다.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헤헤 같은 웃음과 함께.(만약 그 기간이 선거 기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그림을 생각하니 뭔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사실 "국회의원을 보니 머리가 절로 숙여지더라"라는 사고를 들여다 보면,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습과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말하고 싶지만, 주제와 멀어지니 나중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그것보다 따지고 보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국회의원 일텐데, 왜 우리가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일까.(물론 굳이 따지자면 둘다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아니면 그들이 우리의 삶을 보살피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우리는 그들에게 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일까?


 곧 그만두겠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한 회사의 영업지원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회사의 영업지원팀에서 일하다 보면 영업을 직접 뛰시는 분들에게 항상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는 한다. 누군가에게 주어져야 할 계약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간다거나, 계약 개수를 잘못 파악한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들이다. 업무상 실수가 발생하면, 영업을 지원해주는 팀에서 영업 하는 분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약 영업을 하시는 분이 무언가 잘못을 하면 그분이 우리에게 잘못했다고 말을 하겠지. 서로 업무 상 사과를 하기는 하여도, 그들의 직위에 우리가 머리를 숙이거나 하지는 않는다.(물론 대부분의 한국 회사에서는 업무상의 실수가 아니더라도 숙일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실수할 때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난 그들이 도덕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과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도덕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사과를 하는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건 개인적 사정일 뿐인데. 국정을 잘못 이끌어나가는 것은 그들에게는 잘못이 아닌가 보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들 역시 그들이 국정을 잘못 이끌어나간다고 해서 특별히 비판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가 어떤 정당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비난의 정도가 달라질뿐.


 우리 국민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태도는 아직 조선시대 왕을 섬기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못한 것 같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신하는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백성은 단지 그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따를뿐. 우리가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면,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것은 당연지사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올시다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 아무도 왕이 하늘에서 내려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국민을 대신해서 행정부의 수반으로 앉아있는 대통령과 입법부에서 의결권을 지니고 있는 국회의원을 스스로 뽑는 민주주의시대를 살고 있다. 왜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서 단순히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닌채로 존재하는것인지. 단순히 그들을 우리의 일을 대신해서 해주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할수는 없는 것일까.


 며칠전 스웨덴 정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곳의 국회의원들은 단순히 국민들의 일을 대신해서 도움을 주는 국민의 서포터들에 불과하지 않았다. 불과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들을 무시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최선을 다해 그들의 업무를 수행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역시 그러한 국회의원들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의 수많은 희생으로 일구어온 지금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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