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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k Jun 29. 2021

PART 1 - 퇴사 리틀포레스트 3

보신각 너머

 국비지원 프로그래밍 교육 개강 첫 날. 종각역에서 내려 1번 출입구를 올라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종탑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보신각 종탑. 연말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 보신각 종탑 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술집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하얗게 불태운 광화문 직장인들에게 위안이 될 지도 모를 맛집들과 술집들을 따라 청계천 방향으로 빠지면 컴퓨터 학원 하나가 구석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다.


 희미한 불빛에 이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하얀색으로 도배된 컴퓨터 학원스러운 상담 데스크가 반겨주었다. 안내를 받고 강의실로 들어가니, 교실 전체가 아이맥으로 꽉 차 있었다. 심지어 매직 마우스와 매직 키보드까지 구비되어 있는 학원이라니. 시설 투자 규모에 기가 죽어 잠깐 흠칫하기는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터였다.


 그쯔음 창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같이 창업을 하기로 했던 형과의 관계는 틀어져버린 후였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확실히 대답할 수 없다. 관계라는 것은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 마련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 결국 나는 우선 취업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고, 구상해두었던 농산물 플랫폼 창업은 잠시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추후 창업을 하게 될 경우 같이 할만한 친구를 찾는 것이었다.


 나와 6개월 동안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전부 다른 배경을 지닌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여, 정보병으로 군대를 가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친구도 있었고, 웹 퍼블리싱만 하다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배우러 온 친구도 있었다. 교육기간동안 친해진 이 2명을 제외하고, 사실 다른 이들의 배경은 잘 모른다. 


 첫 3개월은 학원생들 대부분이 서로 말도 안하고 지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만 하기를 원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왠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한 시점 이후로 서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친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모두들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고, 그렇게 수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혹시나 개발자가 되고자 국비지원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는 분이시라면 아래 포스팅된 글을 읽도록 하자. 국비지원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열심히 안 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교육생들은 모두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니 면학 분위기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글은 이미 정리해놓은 적이 있으니, 이 매거진에서는 넘어가도록 하겠다.

https://brunch.co.kr/@chunja07/45


 시간은 흘러 교육 이수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인풋을 투입했지만, 어디가서 프로그래머로 일 할 수준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보처리기사 시험 준비도 하며 전반적인 이론 공부도 하고, 심지어는 주말에 네트워크 오프라인 수업도 따로 들으며 공부하고는 했다. 다행히 기사 필기 시험도 붙긴 하였지만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이 4년 동안 배우는 것을 6개월 안에 한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말도 안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래도 기왕 포트폴리오도 만들었으니, 딱 한 달만 프로그래머로 이력서를 내보고 아무곳에서도 연락이 없으면 이전 경력을 살려서 취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 인사담당자로서 느끼지만, 나 같아도 30살 넘은 6개월 국비교육 프로그래머 이력서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30살 넘은 국비 교육생들의 취업 수기를 읽으며, 혹시라는 마음을 가져보기는 했다.


아쉽게도 1개월 동안 약 20~30개 업체에 지원해보았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전 경력을 살려 이력서를 넣게 되었다. 역시나 이전 경력을 살리니 취업이 어렵지는 않았고, 2군데를 붙어 1군데를 선택하게 된다. 한 곳은 대기업 계열사였고, 한 곳은 스타트업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곳은 스타트업이었다.


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잘 한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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