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
20년 전, 요정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다. 내 딸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생겼다. 이름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 **엄마, 며느리, 부인 등으로 불리며 점차 이름이 사라져 가는 게 여자다. 어법으로 보면 모두 소유격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기는 가부장적 병폐는 곳곳에 남아있다. 어떤 딸인데, 절대로 그렇게 되게는 할 수 없었다. 성별 구분 없이 차별받지 않고 ‘같은 사람’이라는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으며 살게 하고 싶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빠의 고민은 시작됐고 오래지 않아 결론을 내렸다. 그런 봉건적 호칭들은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집안에서 하는 역할에서 파생됐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관습적으로 주어지는 역할에서 딸아이를 과감히 떼어 놓기로 했다. 주방일, 청소, 빨래, 커피 타기 등 집안일과 멀찍이 떨어뜨려 키웠다. 차라리 아들 녀석을 시켰다. 어려서부터 집안일 야무지게 잘한다는 소리 들어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 주변의 칭찬이 습관을 만든다. 훗날 결혼하고도 밖에 일은 일대로 하고 집에선 가사노동에 치어 산다. 그러느니 아예 못하는 게 낫다. 정 답답하면 같이 사는 놈이 하겠지 하고 말이다.
계획은 완벽했고 실천도 빠르고 좋았다. 단, 한 가지 염두에 두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미미한 부작용이다. 딸아이는 자라면서 숲 속의 잠자는 공주, 나무늘보, 배짱이 까지 돼버렸다. 잠이 많은 것은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희박한 과학적 근거가 있으니까 그렇다 치자, 정말이지 징그럽게도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방 청소는 물론 제 것도 잘 챙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았다. 좀 그러면 어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옆에는 듬직한 아빠가 있는데. 그렇게 아빠는 딸아이의 우렁각시가 됐다.
가끔 아들 녀석이 볼멘소리를 하면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아빠, ** 좀 시켜, 왜 나만 시켜”
“그럼, 너도 딸로 태어나든가, 그리고 아들은 좀 해도 돼”
고3 때는 밤 열 시 넘어 이웃 동네에 사는 젊은 애기 엄마한테 생리대 빌리러 간 적도 있다. 고맙게도 두 봉지나 줬다. 빌렸다고 해서 똑같은 상표의 생리대를 읍내 마트에서 사서 되돌려 준다는 것은 더 이상했다.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것으로 퉁치고 넘어갔다. 밤 10시 정도 되면 제 방에서 아빠를 부른다. 두 달 후, 대학에 입학하는 딸이 아빠에게 이불 덮어 달라는 소리다. 먼저 살던 집에는 약간의 웃풍이 있었다. 담요와 이불을 차곡차곡 덮어주고 불을 꺼주면 딸아이는 그제야 잠이 든다. 조금만 귀찮아도 코맹맹이 소리를 해가며 해바라기가 아닌 딸바라기 아빠를 찾는다. 문을 닫고 돌아서, 왜 저렇게 키웠는지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에 일어나면 맛있는 아침 겸 점심을 차려주어야 한다. 전날 나는 얼갈이배추를 버무리고 딸아이는 옆에서 고춧가루 등 양념을 넣어줬다. 김치통에 담고 조금 남겨서 참기름과 약간의 깨소금을 추가한 겉절이와 삼겹살이다. 냉장고에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삼겹살 한 팩(500g)을 꺼내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리고 익어 가기 시작할 쯤에 잘게 자른다. 보통 식당에서 먹는 크기의 1/3이라고 보면 된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면 양파와 파를 듬뿍 올린다. 추가로 고추냉이 장과 쌈장 그리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깻잎을 빠뜨리지 않는다. 양파의 달콤함과 파의 향의 어우러진 삼겹살이다. 고추냉이 장에 찍어 겉절이와 함께 오물오물 먹는 모습만 봐도 우렁각시 아빠는 배부르다.
어려서부터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고 숫기도 없던 딸아이였다. 나가 놀기보다 몇 시간씩 앉아 인터넷에서 꽃 그림을 찾아 똑 같이 따라 그리고 컬러링 북에 정교하게 색칠하는 것을 좋아했다. 미래는 내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 만들어진다. 타박하지 않고 가만히 놔뒀다. 항상 완성되고 나면, 어릴 때나 다 큰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빠에게 보여주며 대단한 작품이라도 한 것처럼 자랑하고 우쭐거렸다.
“아빠, 이거.”
“우와, 너무 잘했다... 대단한데, 어떻게 이렇게 했어?”
“내가 좀 해.”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던 아이가 대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집에선 절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학생회 환경부장까지 했다. 엄밀히 말하면 기숙사와 학교 청소 감독, 분리수거 그리고 학교 게시판 등을 꾸미는 담당이다. 엄청나게 열성적으로 사명하는 다하는 딸아이를 보고 기가 막혔다. 뭐, 저렇게 뻔뻔한 애가 다 있나 싶었다. 정리 정돈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다. 제 방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고 나가면 아빠가 들어가 청소를 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은 학교를 깨끗이 치우고 아빠는 딸의 방을 치웠다.
딸아이는 고3 때도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았다. 자신은 수시로 대학을 가겠다고 하며,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지 굳이 수능까지 공부하지 않겠다고 했다. 맞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내심은 수능 시험공부가 귀찮았던 것이다.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강요할 수도, 그럴 마음도 애초에 없었다. 난 강심장을 가진 아빠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수시도 대입 시험임이 분명한데도 아이는 학교 시험 기간 빼고는 열심히 놀았다. 수시 면접날 긴장하기는커녕 잠이 많은 딸아이는 대기하며 졸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4년제 모 대학 원예학과에 일부 장학금까지 받으며 당당히 들어갔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꼭 공평한 것 같지 않다.
지금은 대학에서는 부 과대표를 하고 있다. 방학 때와 주말이면 피자가게에서 알바를 해서 용돈을 쓰고, 남을 돈을 모아 자신의 꿈인 플로리스트가 되기 위해 학원에 다니겠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나무늘보에 숫기 없던 딸아이에게는 엄청난 변화다. 어버이날에는 이 아빠에게 삼만 원씩이나 보내주었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벌어서 유학도 갈 것이다. 여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가지고 사는 자립적 삶의 시작이다. 역시 내가 딸 하나는 잘 키운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딸아이는 커가면서, 앞으로 어떤 색깔을 칠하면 좋을까 하고 무수한 상상을 했다. 아빠는 우렁각시가 돼서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며 바라봤다. 힘든 유년시절을 꿈을 꾸듯 유치한 상상 하나로 버텨온 경험 있는 아빠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아이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험문제 몇 개 틀리기라도 하면 집안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아이는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고개 숙여야 한다. 그깟 대수롭지도 않은 시험이 집안 분위기를 망치고 인생을 결정한다고 여긴다. 당장 시험문제 몇 개 틀렸느니 맞았느니가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을까? 설사 어렵게 아이가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고 해도 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현실이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설득부터 한다. 끝말은 ‘가서 공부나 해’라 다. 이렇게 겁 많은 부모는 꿈은 젖혀두고 아이의 자존감까지 꺾어 놓는다. 세상에 겁을 내는 부모는 언제나 불안하고 예민하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불신하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 부모가 편안하고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이는 부모의 눈치 때문에 책상에 앉아 아무거나 하는 척한다. 생각해보지 않고 아무거나 무작정 하는 것처럼 무서운 습관은 없다. 결국 성장해서도 꿈과 상관없는 아무런 일을 하고, 자존감이 없으니 순간을 모면하려고 아무런 말이나 하고, 흘러가는 데로 남들과 대충 맞춰 가면 되지 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살게 된다.
아이들에게 부모란 사랑이란 가면을 쓴 불편한 감시자이고 잔소리꾼일 뿐이다. 아이들은 맘 편히 거실 소파 앉거나 누워 있을 수도 없다. 부모, 특히 아버지가 들어오면 슬쩍 제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않는다. 누워있던 컴퓨터 게임을 하던 ‘하이’ 하며 서로 손 하나 들어주는 것으로 아빠와 인사를 끝낸다. 어떨 때는 그마저도 생략한다. 게임 속에 몰려오는 적군을 물리치는 게 더 급해서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난 복잡한 건 딱 질색이고 편안한 게 좋다. 불편한 관습적 예의보다 행복을 택했다. 아이들이 내일 행복하기보다 오늘 행복했으면 한다. 내일은 내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아빠 딸. 뭐해?]
[아빠, 나 지금 뒹굴거려]
[아휴, 예쁘다, 계속 뒹굴뒹굴해]
얼마 전 서울 집에서 지내는 딸아이와 카톡 내용이다. 아직도 아빠 앞에선 애기 노릇 한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아들밖에 모른다. 오늘 난 천기누설을 했다. 이러다 걸리면 정말 딸아이에게 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