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함을 채워주는 책방
내가 그 책방을 본 것은 오래전 영국 레스터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였다. 당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책으로 막 출간될 때 일이다. 약 한 달 정도 해외 출장을 나가야 했다. 중국 항저우를 시발점으로써 계속 서쪽으로 가는 여행이었다. 인천공항 책방에서 반지의 제왕 전권을 샀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부족들과 외우기도 벅찬 낯설고 재미난 이름들, 게다가 상당한 분량이었다. 무료한 비즈니스 여행 서적으론 그만큼 좋은 책도 없었다. 혼자서 공항에 대기하거나 호텔 방에서 읽다 보면 뒷장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꾹 참고 글자 한 톨도 빠뜨리지 않고 정독했다. 빠르게 읽으면 한 달간 할 게 없어서다. 지금이라면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폰으로 사진도 찍어 SNS에 올렸겠지만, 그때는 글도 쓸 줄 몰랐고 스마트 폰도 없었던 시절이다.
반지의 제왕을 읽으며, 그 많은 인물들의 세밀한 설정에 놀랐다. 영국은 셰익스피어의 나라가 아니라 톨킨의 나라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 드디어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여섯 번째 목적지를 가기 위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영국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였다. 다음날은 바쁘게 스페인 남부 지중해 알리칸테로 가야 했다. 비즈니스 여행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만나는 상대방과는 적어도 한 달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 놓고 출발한다. 그러자면 다음 약속이 잡혀있는 장소까지 비행시간을 맞춰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듯 계획한 데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한다. 만나서 계약이 성사되면 소득이 발생한다. 결국 시간이 돈이란 소리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약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레스터로 향했다.
목적지는 레스터 시티와는 한참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양편으로 툭 터진 초록의 목초지 한가운데로 뚫린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렸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약된 호텔에 도착할 때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목격했다. 저 앞에서 도로가 Y자 형태로 갈라졌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마을이라 할 수도 없는 몇 채의 회색빛 네모 반듯한 돌로 쌓아 지은 흔한 영국식 농가 주택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집들을 피해 길을 낸 것이다. 우리 같으면 대책 없이 밀어버렸을 상황이다. 잠시 생각해보고 나라마다 건설 규정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갈라지는 모서리에 작은 책방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다시 사방을 둘러봐야 했다. 오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집들이라곤 책방 건물 뒤로 보이는 농가 주택 몇 채가 전부다. 책방이 왜 저기에 있는지, 사업을 한답시고 머릿속을 숫자로 채워 살던 시절에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적하다 못해 썰렁한 저런 곳에 책방을 한다면 책이 팔릴까? 저 책방 주인은 이런 외딴곳에 왜 책방을 운영할까? 유명 작가와 관련 있어 도로를 갈라지게 만들었나? 우후죽순 다채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짐을 반복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작가들이 살던 나라라서 그런가 하는 다소 억지스러운 답을 만들어 냈지만, 고작 그것 가지고 모든 의문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다.
난 호기심이 무척 많다.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 하고 내렸다. 유심히 살펴보았다. 밖에서 본 진열대에는 다양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들의 표지부터 시선을 끌어당겼다. 흡사 예술 작품을 그려 놓은 듯 알록달록 화려했고 때로는 고풍스러웠다. 표지에 반해서 무턱대고 아무거나 사고 싶었다. 언젠가, 영국인들은 책 수집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전면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책장 꼽힌 책들이 약간 낡아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최근에 나온 책들뿐 아니라 오래되거나 구하기 힘든 책도 팔지 않을까 하며 계속 무언가 떠오르려고 하는 찰나, 바이어와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먼저 떠올랐다. 책과 돈 사이에서 선택을 망설이는 바보는 없다. 돈이 있어야 책도 산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차에 올라타고 호텔로 향했다.
그날 밤은 반지의 제왕도 읽히지 않았다. 머릿속을 온통 그 책방에 관한 생각으로 채웠다. 나의 주특기인 상상력이 우주 저 너머 안드로메다 성운까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허허벌판의 책방이라니, 침대에 누워 차분히 낮에 본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뒤편 집들과 책방 건물 사이에 경계가 없고 승용차와 승합차가 있었다. 이것은 같은 사람 소유라는 것이다. 책방 주인은 이 지역 희귀 서적 중개인이고 뒤편 농가 주택들은 책 보관소와 사무실이다. 고서적, 초판본, 작가의 친필 서명 등 소장 가치가 있는 희소성 있는 책을 중개해 주고 거기서 발생한 이익을 챙기는 중개상인이다. 개인에게 파는 것뿐만 아니라 여타 농가 허름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구매해 대도시 책방에다 이윤을 남기고 팔 것이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본들은 중고서적 가격이 아니라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영국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속 포아로처럼 난 그 책방에 대해 감성을 배제하고 숫자를 대입해 냉철한 논리로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갔다. 내가 풀어낸 수수께끼가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허허벌판의 썰렁함을 저 작은 책방이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차를 타고 그 책방을 지나치며 참담함을 느꼈다. 경제 논리로 따지면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 바꿔 말하면 수요를 창출하는 충분한 독자가 있고 그들의 정신에 풍요로움을 공급해 줄 많은 작가가 있다는 것이다. 비교우위를 극한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비참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영국은 과거 빅토리아 시대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다. 현재는 해가 졌을까? 잊을 만하면 나타나 세계를 지배했던 대문호들.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아서 코난 도일, 버지니아 울프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이젠 위대한 여전사 조앤 롤링 이 마법사들 까지 거느리고 불쑥 튀어나와 가차 없이 펜을 휘둘러 세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 그땐 이미 조앤 롤링은 전 세계 팬을 보유한 21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들어설 때였다. 영국은 해가 질 수 없는 나라다. 차를 다시 세워 문을 열고 들어가 물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참아야 했다. 당시 내 영어 실력은 고작 여행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길을 묻고 내 물건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래도록 쓰지 않아 그마저도 못한다.
세월은 훌쩍 16년이 지났고 책방이 없는 영양에서 살고 있다. 그날은 포항 치과에 가는 날이었다. 매번 일찍 출발해 직진하지 않고 흥해 읍내 못 미쳐 좌회전해서 영일대에 잠깐 머무르다 시내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유롭게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22살 나이에, 난 왜 언제나 착한 사람(바보) 소리를 들어야 할까 하고 청승 떨던 그 바다였다. 그쯤부터 인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인문학은 학문의 제왕답게 나 같은 바보도 변화시켰다. 내가 변화를 시작한 곳이 어쩌다 보니 연고도 없는, 지금은 영일대라 불리는 북부 해수욕장이 됐고 그 바다가 그리웠다.
그날은 네비가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겨 좌회전 신호를 놓치고 직진을 했다. (운전은 앞으로 15년만 더하고 면허증 반납해야겠다.) 아차 싶었다. 다음 신호등에서 유턴하려고 신호를 기다렸다. 그때 오른쪽 인도에 **중고등 학교로 교복 입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흉측한 것을 본 것처럼 인상이 찌푸려졌다. 학교 정문 바로 왼편 담장에 붙어 버젓이 ‘중고 참고서 전문점 **서적’ 이란 커다란 간판을 단 건물 때문이었다. 길게 늘어선 전면 유리창은 모두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게 끔 간판과 같은 색상인 진청색 선팅지로 도배했다. 책방이 아니라 무슨 창고 같았다. 저게 뭐란 말인가. 참고서만 파는 책방이라니, 순간 허허벌판 외딴곳의 썰렁함을 채워주던 영국 촌 동네에 있던 그 작은 책방이 떠올랐다. 난 비참하게도 16년 전의 그 참담함을 다시 되새김질해야 했다.
'도대체 우리는, 저 아이들에게 무엇을 채워주고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