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고,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쓴다.

느리게 살다.

by han


지난 2월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하우스 골조 파이프를 옮기다 앞니를 부딪쳤다. 결국, 임플란트 한 개 하려고 장장 오 개월 동안 치과를 다니고 있다. 며칠 전에도 포항 치과에 가는 날이었다. 예약은 오전 10시임에도 6시 30분에 출발했다. 이곳 영양에서 포항까지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난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밀가루 반죽 잡아당기듯 세 시간 반으로 늘렸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을 단축하려고 하지만 난 그 반대다. 어차피 치과 진료 관계로 오전에는 밭일도 할 수 없다. 짧은 여행 하듯 느리게 다녀오고 싶어서다. 다소 모순적이라면 일찍이 서둘러야 느리게 간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하여간에, 매번 갈 때마다 코스에는 큰 변화가 없다. 강구 포구에 있는 식당에서 맛난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고 해안도로를 느긋하게 달려 포항 영월대에서 바다를 보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고 치과로 간다. 그렇게 느긋이, 흡사 영화관에 앉아 있는 관객처럼 주변을 바라보면, 이 생각 저 생각 흥미로운 상념들이 떠오른다.



그날도 떠오른 상념들을 느리게 생각하며 8시 40분경에 치과에 도착했다. 진료를 받으려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도 준비된 계획이 있다. 큰 건물 2~3층에 위치한 치과에는 이상하리 만큼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가 하나 있다. 오 개월을 다녔지만 한 번도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언제나 한 시간 조금 못되게 도착해, 그 자리에서 대기하다 진료를 받는다. 이층에서 삼층으로 올라가는 실내 계단을 만들다 우연히 생겨난 아늑한 공간이다. 그곳은 다른 곳과 달리 빨간색으로 칠한 선명한 벽과 그림 액자 그리고 노란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게다가 창가 바로 옆이다. 사치스럽게도, 그곳은 나만의 전용공간이 돼버렸다. 아마도 치과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많다 보니, 스스로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런 것 같다. 그날도 변함없이, 전용 좌석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브런치에 올라온 에세이를 읽고 가만히 창밖을 내려다봤다.


20190709_140108 (2).jpg


치과 진료를 마치자 11시가 조금 넘었다.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그냥 아빠가 보고 싶어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난 아빠다. 왜 전화를 했는지 짐작했다. 지금 자신이 가는 길이 정말 맞는지 확신이 흔들려서다. 녀석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었다. ‘흔들리지 말고 천천히 가야 한다. 인생은 빨리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서울에 지내면서, 보이는 사람들 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에 초조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23살, 그 나이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초조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어른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잠시 쉬기라도 하면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을 한다. 아르바이트하며 웹툰 습작을 하는 녀석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전화 말미에, 네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차분히 관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책을 보고 작가의 사상과 경험을 간접 체험하듯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라는 뜻이다. 녀석은 한결 밝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알았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 간접 체험’이란 글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연관되는 인물들이 떠올랐다. 몇 번 바닷가 이미지를 올리자 대리 만족하겠다며 서슴없이 나서는 독자이자 친구들이다. 게다가 서울은 지금 폭염이라고 한다. 마음이 저 바다처럼 넓은 나는, 그들을 위해서 몇 장의 바닷가 사진을 폰에 담아서 돌아왔다.


어디 담아온 것이 사진뿐일까? 앞만 보고 빠르게 가면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느리게 가면서 다채로운 생각들도 담아왔다. 늦은 밤,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옮겼다. 그렇다고 다음날 바로 글을 올리지 않는다. 비록 짧은 에세이지만, 글재주가 부족해서 며칠에 걸려 퇴고를 거듭한다. 우선 내가 가진 생각을 힘 있게 썼나를 살펴본다. 작가 자기 생각을 어필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려 적절히 타협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아서다. 자신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맥 빠진 글로 타인의 공감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나답게 살기로 했다면 글도 나답게 써야 한다. 그다음에는 문맥은 부드러운가, 중복된 단어는 없나, 읽기 쉽고 편안한가 등을 본다. 글이란 것은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알려서 사교 모임이나 만들려고 쓰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어 세상에 소리치는 것이다. 인기가 있든 없든, 그 어떤 글도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작가를 영원히 떠난다. 작가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글은 어디엔가 남아서 돌아다닌다.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훗날 아빠가 없어도 등대의 불빛 마냥, 나의 글이 남아서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쓸까 보다 어떻게 쓸까를 항상 고민한다. 결론은, 조악한 글을 남기지 않으려고 오래 생각하고 느리게 쓴다.


20190709_151251 (2).jpg 차를 모레 사장 앞 까지 몰고 들어 갔음.
20190708_122808.jpg




전용좌석, 멋진 해변, 여유로운 드라이브. 내 나이 때 사람들은 사는 게 전쟁이라고 하는데...

난'농부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엄청 사치스럽고 가슴에 허영끼가 가득 찬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keyword
팔로워 1,224
이전 16화여자 사람, 남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