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사는 거, 폼나게 살자.
한여름이다, 작업복 바지에 장화를 신고 상의는 벗고 일한다. 다 이유가 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온몸에 땀띠가 나 가렵고 쉽게 짓무른다. 차라리 웃옷을 벗고 수건으로 닦으며 일하는 편이 훨씬 낫다. 햇볕에 선탠 한다는 심정으로 한다. 뭐, 보는 사람도 없고, 본다 하더라도 그냥저냥 몸매의 균형은 잡혔다. 딸아이가 완벽하다고 했으니, 폼은 나는 것 같다. 매일 조금씩 맨몸 운동을 한 덕분이다.
내 나이에 이 정도면 나름대로 폼나게 사는 건 맞지만, 요즘은 폼보다 우선에 더워 죽겠다. 매일 서너 번씩 폭염 경보가 울렸다. 잠시라도 밭에 다녀오면 온몸이 후끈거리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루 다섯 번 이상은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온종일 냉탕 온탕을 번갈아 살다 보니 몸이 적응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머리가 띵하고 무거웠다. 머리도 식힐 겸, 내친김에 나도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산골에 살고 심심치 않게 바닷가 오가며 지내는 사람이 무슨 휴가냐 할 수 있겠지만, 농부가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로 서다.
20일 동안, 글은 쓰지 않고 읽기만 했다. 그것도 20·30세대가 쓴 에세이를 열심히 찾아 읽었다. 취준, 인턴, 비정규직, 인간관계 등 당면한 문제에 대한 웃픈 이야기다. 읽는 내내, 내 시대나 지금 시대나 세상은 왜 이렇게 변하지 않는지 한숨이 나왔다. 읽고 곱씹어 볼수록 뾰족한 가시가 되어 손가락 끝을 파고들었다. 가끔,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아주면 ‘당신도 힘내세요’라는 의미의 답 글이 달린다. 서로 위로하는 처지가 됐다. 그들에겐 내가 같은 고민을 하는 연령대로 보였나 보다.
어려서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폼나게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 마주한 현실은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시리다. 처음 3포로 시작하더니 대번에 5포, 7포로 진화를 거듭했다. 이젠 완전체인 N포 세대가 돼버렸다. 앞으로 뭐를,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할지 감히 셀 수도 없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원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아무리 자소서를 자소설로 둔갑시켜도 힘들다.
스펙 좋고 외모부터 성격까지 어디 한 군데 빠지지 않는 엄친아, 엄친딸은 왜들 그렇게 좋은 직장에 취업이 잘 되는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교당한다. 작심하고, 눈높이를 낮춰 취업했다 치더라도 끝이 아니다. 누구는 얼마 받느니 하면서 연봉을 비교당한다. 그런 직장에서는 노동의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쉽게 무시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 내에서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한다. 결국, 직장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세상 살아가는데 별 필요 없는 자기개발에 열 올리다 마흔 중반에 전혀 명예스럽지 않은 명예퇴직당한다. 추측성이 아니다, 46~49세가 평균 퇴직 연령대라고 정부 통계에도 분명히 나와 있다.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도 사회 이슈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 출신 대학, 성별, 비정규직은 기본이고 하물며 인턴직원 점심 도시락 싸 오는 것까지도 눈치를 준다. 이 정도면 미워하고 싶어 미워하는 것이지 별다른 이유가 없다. 정신승리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먹고살려고 다니는데 정작 죽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좋다는 기업이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견고하게 버틴다는 보장도 없다. 당장 시중은행과 대형 마트만 봐도 알 수 있다. 은행은, 금융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인터넷에 밀려 점포를 축소하다 못해 길거리에 널려있던 ATM기마저 줄인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은행 감원에 대한 뉴스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내로라하는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골목상권 무시하고 전국 상권 다 차지할 것처럼 기세 등등하게 오프라인 매장을 죽자 살자 늘려가더니,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폐점한다고 난리다. 당연히 줄어드는 매장 수만큼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순식간에 안면 몰수하는 기업이란 조직에 자신의 인생을 맡겨야 할까?
굳이 힘들게 용하다는 점집 찾아가지 않아도 앞으로 발생할 일이 훤히 보인다. 지금은 혼자지만 그때는 올망졸망한 가족이 딸렸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숙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닥쳐올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산다면, 훗날 당신에게 남는 것은 늙음과 후회뿐이다. 현재의 직장, 연봉, 안정이 당신들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뿐인 인생이다. 이왕 살려면 폼나게 살아야 한다. 폼이란,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개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자면 기본 원칙 세 가지는 지켜야 한다.
첫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꾸준히 익히는 것이다.
회사가 원하는 자기개발 보다 본인의 삶을 위한 자기개발을 하라는 소리다. 대부분의 회사와 오너는 당신의 삶이 어떻게 되든 관심조차 없는데 직원인 당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설 필요 없다. 받는 만큼만 일해주면 된다.
둘째는 타당하다면, 생각한 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싫은 소리는 들어도 되지만 권리침해를 받았다면 당당히 따져야 한다. 그러다 나아지겠지 하면 나아지기는커녕 호구로 보고 갈수록 심해질 뿐이다. 팀장, 부장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따져야 한다. 망설이고 굽신거리고 사는 것도 습관 된다.
셋째는 가벼워야 한다.
이것저것 주렁주렁 매달고는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푸드덕' 거리는 소리만 요란하지 얼마 날지 못한다. 깃털처럼 가벼워야 자유롭게 남들보다 멀리 날 수 있다. 사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관계를 허전할 정도로 줄여야 한다. 의미 없는 단톡방이나 오프라인 모임을 줄임으로써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사귀고 있는 그 사람한테 신경 쓰는 게 당신 인생에 훨씬 이롭다.
나이 든 사람들은 지킬 게 많지만, 젊음은 가진 게 없는데 잃어버릴 게 뭐가 있을까. 기껏해야 직장일 뿐이다. 간절히 원한다고 우주가 절대 소원 들어주지 않는다. 간절한 쪽으로 쉼 없이 한발 한발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으면 크든 작든 간에 언젠가 기회가 온다.
인생은 멋진 해변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거친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이다.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 눈치 볼 것 없이 뛰어들어라. 사람들 시선 의식할 필요 없다. 남들이야 그러든 말든, 흘깃 쳐다만 봐도 다르게 보이는 우월한 족속처럼 폼나게 살아야 한다.
오십 대 중반인 나 또한 지금처럼 땀 흘리며 계속 폼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나이 칠십 줄에 들어서면 구릿빛 그을린 몸에 어깨에 커다란 문신을 하고 바닷가 앉아 맥주를 마시며 폼 잡고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작게라도 남들이 알아볼 정도는 돼야 좀 더 폼이 날 텐데 말이다. 이제 여름휴가도 끝났으니 다시 열심히 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