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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09. 2020

위아래를 몰라보는 남자와 여자

이중인격자



“사랑에 빠진 딸기 하고 체리쥬빌레... 또... 음... 그리고... 초코나무 숲 주세요. 아, 그리고 ***-****-****으로 적립해 주세요.”


경쾌한 발걸음으로 아이스크림점에서 나왔다. 조그만 분홍색 쇼핑백을 들고 오는 내내 흐뭇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사람 중 하나에게 주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한 적은 절대 없다. 단지, 지나가는 투로 ‘아도크림’이라는 혀 짧은 소리를 냈을 뿐이다.


내가 무작정 사랑하는 그녀는 겨우 22살밖에 안 됐다. 집에선, 아직도 애기라 불리는 대학생인 딸이다. 이렇게 난 심심치 않게 딸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다 준다. 전부터 그랬다. 산골에서 지낼 적에는 일반 막대 아이스크림을 항상 냉동실에 비치해 두었다. 딸아이는 하루에 7~8개는 먹었다. 그래서 한 번에 35~40개를 사 와야 했다. 아이스크림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빠에게 눈을 흘기는 뻔뻔함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대학을 진학하고, 서울 집으로 온 후에도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퍼먹는 아이스크림으로 바뀐 것뿐이다.


딸아이는 초콜릿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이런 달콤한 것들의 조달은 아빠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난 밖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냉랭하게 끊어 말하고 돌아서는 사람이다. 하지만, 딸아이 앞에만 서면 혀 짧은 소리가 나온다. 왜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는지. 딸아이는 아빠에게 있어 절대 갑이다. 우리의 대화 속에 ‘맘마 먹자’ ‘코~자‘ ’ 애기야‘ ’우데기 그랬떠? ( 우리 아기가 그랬어?)등 유치 찬란한 대화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좀 어떤가 아빠와 딸인데, 가족은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간혹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 집 동네에 카페가 있다. 한 번쯤, 남들처럼 그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진동벨을 받았다. 잠시 후, 빨간 불이 반짝이며 요란하게 울렸다.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로 가면서 끄려 해도 스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이거... 아후... 참... 어케... 꺼요?”


장난치듯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더듬거리고 혀 짧은 소리를 냈다. 멀쩡히 생긴 중년의 커다란 남자다. 카운터에서 기다리던 딸아이 또래 여직원이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딸아이와 장난치듯 행동했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젊은 사람을 대할 땐, 카멜레온이 변신하듯 한다. 소위 말하는 엄근진하고는 거리가 멀다. 대화의 주제를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말투도 엉성해진다. 그들은 처음엔 낯설어하다, 놀라워하고 좀 더 지나면 편안해한다. 


지난번 재미 삼아 택배 분류 아르바이트할 때도 그랬다. 체통 머리 없이, 스물아홉 살 된 여자 아이와 재미나게 수다 떨었다. 남들 시각엔, 손뼉 치고 깔깔거리는 것이 친한 친구처럼 보였지 않았을까 한다. 별다른 주제도 아니었다. 시중에 파는 흔한 햄버거에 관한 이야기였다. 난 맥도널드보다 버거킹 특유의 탄내와 크기를 더 좋아한다고 했고, 그녀는 맞다 하면서 감자 칩은 맘스터치가 맛있고 콘 수프는 맥도널드가 좋다고 했다. 나와 그녀는 서로의 품평에 맞장구치며 공감했다. 우린 별것도 아닌 햄버거 브랜드에 대한 동질감을 형성했다. 말미에,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삼촌처럼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아요.”


가끔 젊은 친구들이 내게 묻는다.


“삼촌은 왜, 그래요? “


갈색 가죽 등산화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 절대 국민 단체복인 아웃도어는 입지 않는 아버지 나이 때 남자. 그들 보기엔, 같은 또래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희귀한 이방인이었다. 난 그때마다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왜, 이상해? 내가 원래 위아래를 몰라봐”


그렇다, 위아래를 몰라본다. 나이는 바보들이나 따지는 짓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 부족으로 외롭다는 사람들이 있다. 외딴 산골 오두막에서 그리움 가득 담아 놓고 살지만 외롭진 않다. 바람처럼 어디든 갈 수 있고, 별처럼 누구와도 속삭일 수 있다. 왜들 한 곳에 머물러서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와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넓게 살면 되는데 말이다. 젊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으면, 그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그들과 어울리면 되지 않을까. 과거에 뭐를 했던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함께 알바를 해도 체면 상할 일 없다. 직업도 사람도 위아래 따지지 않고 살아야 한다. 나이와 체면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것처럼 추한 것도 보기 드물다.


아빠가 주로 아랫사람을 몰라보는 부작용이 생겼다면 딸아이는 정 반대 현상이 생겼다. 딸아이는 특이했다. 아기 때부터 직계 가족 이외에는 눈도 못 마주치고 울기만 했다. 온종일 정신산만 하게 뛰어다녀야 적성이 풀리는 두 살 터울의 오빠와는 달랐다. 집안에서 책을 읽거나 그림, 피아노, 만들기를 하면서 혼자 놀았다.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으니 일어날 일이 불 보듯 뻔했다. 공부든 뭐든 야무지게 잘하는 아이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그럼 뭐 하나, 약간의 숫기조차도 없는 탓에 아는 것도 손들지 못하고 발표도 못 하는데. 만나는 담임 선생님마다 재능이 아까워 뭐 하나 시키려 하면 눈도 못 마주치고 울먹거렸다. 한 번은 초등학교 과학 경시대회 학교 대표로 나갈 때였다. 죽어도 가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끌려가는 듯, 그 스트레스를 무려 한 달 동안 아빠에게 풀었다. 차라리 아빠가 집을 나가고 싶었다. 정 그러면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가까스로 설득해서 참가하긴 했다. 결과는 우습게도, '**초등학교'라고 쓴 상은 딸아이가 받았다.


그런 딸아이에게, 집에서 만큼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했고 항상 치켜세워 주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아빠는 누구를 대하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나쁜 교육은, 부모가 다른 사람 앞에서 굽신 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위아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가 세상에 비굴하면 자식도 비굴하다. 


시간이 지나며, 딸아이는 외적 성장과 더 불어 내적 자존감도 조금씩 커져갔다. 자신의 부모에게 인정받는 아이의 자존감은 그렇지 못한 아이와는 비교할 수 없다. 엉뚱하게도, 집에선 어리광 피우는 22살 애기고 밖에선 얄미울 정도로 똑 부러지게 행동하는 언니로 변신한다. 이렇듯 철저한 이중인격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억울하게도, 아빠의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줄어들거나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떨 땐,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아빠만 찾아대는 딸아이를 보면 한 숨이 나온다. 그래서 옛말에 ‘자식은 절대로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란 말이 생겨난 것 같다. 딸아이는 자신이 맡은 일은 야무지게 완수한다. 그러나 그 이외에 권리 침해는 용납하지 않는다.


“사장님, 나, 오라는 곳 많아요, 오래 근무하는 알바를 원하면 바보 같은 애 뽑아서 쓰세요. 난 호구 짓 할 수 없어요.”


얼마 전, 잠깐 알바를 하던 전문 음식점 사장과 아빠 나이 때 주방장에게 남긴 명언이다. 사실이다, 딸아이는 오라는 곳이 많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해서다. 먼저 이 년간 알바를 하던 직영 피자점 점장이 툭하면 전화했다. 아직 퇴직 처리하지 않았으니 다시 나와 달라는 부탁이다. 결국엔 다시 갔다. 지난 근무까지 합쳐 퇴직금도 지급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서다. 단순히 나이가 많고 상급자라 해서 어려워하고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싹수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연설하고 젊은 사람은 '네'하고 들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관습이다. 가정에서도 다르지 않다. 현명한 부모는 명령하고 지시하기보다 들어주고 부탁한다.


이렇듯, 우리 부녀는 이 사회가 정해 놓은 거룩한 기준을 무시한다. 아빠는 아랫사람을, 딸은 윗사람을 몰라본다. 난 실수를 하더라도 할 말 할 줄 아는 되바라진 젊음을 응원한다. 그것은 미풍처럼 작은 저항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선한 작은 미풍들이 모여 큰바람이 되어 결국엔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러고 보면 딸아이는 아빠를 똑 닮긴 했다. 밖에선 당당하고 집에선 부드러운 아빠와 밖에선 당차고 집에선 응석받이 딸이다. 이제 손에 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빨리 갔다가 줘야 할 것 같다. 느직느직 거리다 간 딸아이에게 또 한 소리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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