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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28. 2020

별보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길




한 가지 오래된 습관이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수시로 농막 문을 열고 나와 검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주변에 불빛이 없어서인지 꽤 선명하다. 특히 서쪽 하늘에 떠 있는 겁 많은 보랏빛 별은 무척 맑은 영혼이라도 가진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내게 말을 걸거나 무슨 영감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에서 살고 난 땅에서 산다.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다.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무심할 뿐이다. 단지, 바라보고 있으면 짐승처럼 거칠어졌던 마음도 금세 평온해진다.


말없이 바라보는 무심한 관계, 그런데도 난 어려서부터 차가운 그들과 어울려 왔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하나의 소설에서 비롯됐다. 본래, 유명한 남의 글에 슬쩍 숟가락 얻어 쓰진 않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한다. 바로 프로방스의 목동 이야기인 알퐁스 도데의 ‘별’이다. 


당시에 난 홀로 견디어야만 했던 소년이었다. 열한 살 나이 때부터 밥 먹듯 가출했다. 1월 엄동설한, 밖에서 밤을 보낸 적도 있다. 통금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거리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갔다. 사람이 만든 불빛이 사라지면 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소년은 지상의 어둠 속에 파묻혔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무서움에 몸서리쳤다. 자연히, 빛이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고통을 잊으려면 끊임없이 행복한 생각을 해야 했다. 그때 떠올린 것이 ‘별’ 이야기다.


‘그러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사는군요? 가엾어라! 항상 혼자 있으니 얼마나 따분할까! 무얼 하며 지내세요? 무얼 생각하죠……?’


딸랑거리는 노새의 방울 소리를 내며 올라온 사람은 노라 아줌마도 머슴 아이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주인아씨인 스테파네트였다. 직접 노새에 매달린 바구니에다 목동에게 줄 보름치 식량 가득 싣고 온 것이다. 목동은 ‘아가씨 당신을’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날 밤, 모닥불 앞에서 목동은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는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다.


보잘것없던 목동과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그리고 따뜻한 모닥불과 배고픔을 해결할 식량은 완벽한 조합이었다. 소년은 목동을, 목동은 스테파네트와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다. 그때부터 문득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차갑게 내려다보기만 할 뿐, 그들은 한 번도 소년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그들을 닮아 무심함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별과 함께 순백의 사랑을 한 프로방스의 가엾은 목동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하니, 스테파네트와 목동이 이루어졌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결혼식 전날 밤, 목동은 자신의 초라함을 알고 도망치듯 산을 빠져나와 떠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무심히 별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스테파네트를 떠올리지 않을까.


이렇듯 별은 소망을 들어주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무심하게 반짝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 반짝임을 좋아하고 난 그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별보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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