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Mar 23. 2020

예쁜 새가 죽었다.


산골에서 운전하다 보면 로드 킬은 놀랍거나 하지 않는 일상의 일이다. 길바닥에 새가 널브러져 있어도 그런 보다 한다. 매우 흔한 일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밭에 가는 길이었다. 예쁜 새가 퍼덕거리는 것이 시선을 끌었다. 사람은 유별나게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나도 속물인가 보다, 차에서 내려 우두커니 바라봤다. 몇 번 움찔거리더니, 예쁜 새의 유리알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서서히 희뿌연 회색의 각막으로 덮였다. 무엇을 회한하는 걸까?


순간, 누가 예쁜 새를 시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쭈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뒤척여 보았다. 목 언저리에 콩알만 한 자국이 나 있는 게 보였다. 공기총에 맞았다. 아무도 평범한 황토색을 띤 뱁새나 소쩍새는 쏘지 않는다. 티나 게 울긋불긋 화려해서 죽임을 당했다. 얼추 짐작하건대, 박제라도 해서 실내 장식품으로 쓰려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추론해 주었으면 됐다. 화려하고 예쁘다고 해서 과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것 자체가 차별이다. 무심할 틈도 없이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 그 예쁜 새가 누워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들고양이가 물고 갔는지 사라졌다. 자연의 순환 법칙이라지만 예쁜 새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자신의 날개로 힘껏 날아다니며 벌레나 잡아먹고살았지 허영을 쫓거나 자태를 뽐내지도 않았다. 화려하다는 것은 지극히 사람의 관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예쁜 것을 가만 놔두지 않는 습성이 있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타인이면 어떻게 해서든 소유하려 하고, 본인이면 드러내려 하고, 이것저것도 하지 못하다면 시샘이라도 한다.


농막의 밤이 찾아왔다. 어둠을 뚫고 ‘휘~~ 익’하는 늙은 휘파람새의 긴 울음이 회한으로 들렸다. 낮에 보았던 예쁜 새의 죽음에 이어 내가 아는 두 사람이 떠올랐다. 그와 동갑인 그녀는 무척 예뻤다. 삼십육 년 전, 그에게 잠시 날아와 종알종알 지저귀었다. 그러나 지금은 죽었다. 시샘과 허영은 참으로 집요하게 그녀를 끝까지 추적했다. 결국엔, 그녀를 갑옷처럼 둘러싸고 있던 화려함을 벗겨버리고 영혼까지 찢어발겨 길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어쩜 '시샘과 허영'이란 것은, 대자연이 세상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가지고 있는 악랄 하면서도 평범한 수단 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어리석었다. 자신을 감추고 낮춰야 했음에도 드러냈고 추종했다.


그녀는 어느 지방 소도시 경계에 자리한 촌 동네에서 태어났다. 팔 남매의 중간이지만 부모의 예쁨을 독차지했다. 처음부터 예뻤고 공부도 잘하고 게다가 활기찬 승부욕까지 있는 그녀는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 농부인 아버지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땅이라도 팔아서라도 해주려고 했다. 그만큼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딸이었다. 당연히 주변 모든 사람에게 주목받았다. 여자가 물건이 아님에도, 부잣집 좋은 남자가 데려갈 것이란 소리를 이구동성으로 해댔다. 근거 없는 말도 모두가 그렇다고 하면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그런 달콤한 말을 믿으며 자랐다


당시 대학은 형편이 돼야 가던 시절이었다. 대다수 여자아이들이 상고를 나와 바로 은행과 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돈 많이 든다는 명문 음대에 진학했다. 본인이야 밝은 미래가 열렸다고 여겼겠지만, 그것이 그녀의 정점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같은 동네에 사는, 소위 키 크고 얼짱인 남자를 사귀다 실수로 덜컥 임신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전 임신은 여자들에게 있어 죄악이자 형벌이다. 미혼인 여자가 산부인과 앞을 지나치기만 해도 이상한 소문이 나던 시대다. 이 삼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촌 동네에서 발생한 소문은 그가 젊은 날 잠시 머문 소도시까지 삽시간에 퍼졌다. 사람들은 남의 말하는 데는 하등의 망설임도 없다. 한 여자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짓 김은, 순식간에 예쁘고 똑똑한 여자에서 치명적인 흠을 가진 헤픈 여자로 추락시켰다. 그녀가 전에 무수히 듣던 달콤한 말들은 칭찬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샘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일 뿐이었다.


이렇듯 시샘이란, 타인의 입을 통해 화려한 찬사로 포장되어 나타나고 무색무취의 극독성이 있어 천천히 사람을 중독시킨다. 그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미 뼛속까지 중독되었다. 이제 찬사 대신에 비웃음을 받았다.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극심한 금단 현상과 더불어 불안과 공포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일 이후로, 그녀는 사람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불안증후군이 생겼다.


그녀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당시 집안 망신시킨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 그 집의 귀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양가 부모 합의로, 그 남자의 홀어머니는 며느리로 맞이하겠다고 했지만, 남자의 마음은 이미 다른 여자에게 떠나간 후였다. 명절 때였다, 전날부터 음식 장만한 며느리가 있고 남자가 데리고 온 며느리가 한 집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까지 생겼다. 결국 그녀는 낙태를 하면서 남자도, 다니던 대학도 포기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이듬해 초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아주 우연히 그를 만났다.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그에게 그녀는 우연히 날아온 한 마리의 예쁜 작은 새였다. 말이 무척 어눌하고 순진한 그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무일푼인 그를 길거리 허름한 식당으로 데리고 가 짜장면을 사주었다. 그러면 그는 매번 그녀의 손을 잡고 천 년 전 죽은 자의 무덤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봤다. 그는 무척 가난했기에 초라한 데이트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훗날, 그녀가 기억하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편하게 눈을 마주칠 수 있고, 밤새 함께 있어도 손잡는 것과 입술에 가볍게 스치듯 키스하는 것 이외에는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당시의 자신의 모습은 그녀와 달랐다. 눈치만 살피고 살다 보니 사람의 눈빛에서 감정을 읽고, 어눌한 말투 대신 표정으로 공감을 전달하고, 여자 경험이 전무해서 육체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자애와 가진 것 없는 바보스러운 남자애의 만남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둘 다 어렸다. 그녀는 그와 있으면서 점차 회복되어 갔다. 그러던 중, 그녀의 앞에 자신의 불행을 단번에 행복으로 바꿔 줄 여덟 살 차이 나는 부잣집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고, 철없는 그녀는 드러냈다. 다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부잣집 남자와 혼인한다는 뜬금없는 소리가 그에게도 들렸다. 그는 삼 개월 동안 그녀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이유를 짐작했다. 드디어 그녀가 찾아왔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전처럼 길거리 정류소 옆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주었다. 그녀는 먹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릇을 비우자 용기를 내어서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마침 그의 손에 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가 잡혔다. 그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차표를 끊어 주었다. 예쁜 작은 새는 그의 옆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렇게 훌쩍 날아갔다.


16년이 흘렀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가 하는 길거리 작은 분식점으로 그가 웃으며 불쑥 찾아왔다. 거침없는 말투와 입고 있는 옷 그리고 건너편에 세워둔 검은색 차량이 제일 먼저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눈엔 작은 분식점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흐뭇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숫자였고, 요식 사업한다고 집안 재산 날려버린 남편에 대한 험담이었다. 그는 이내 실망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는지 인상이 찌 부려졌다. 아직도 그녀는 멍청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 책 사주라고 하면서 문화상품권 수십만 원어치를 건네주고 갔다. 사실 그는 중국집만 가면 그녀가 사준 길거리 허름한 식당의 짜장면이 기억났고 언젠가는 갚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다녀가고 얼마 후, 그녀는 가게를 정리하고 보험 상담사를 했고 남편은 수십 명의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제법 큰 유흥주점인 룸 싸롱을 차렸다. 그녀의 차는 여기저기 흠집이 많았다. 보험 하는 사람의 차가 사고가 잦다는 것은 알만한 일이다. 그러다 남편은 차량 사고로 생을 달리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돈은 모이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마저 경매로 넘어갈 처지가 됐다. 딸아이는 그새 커서 그녀처럼 21살에 애를 가져 부랴부랴 결혼하고 아들은 요식업을 해서 큰돈을 벌려고 한다. 빈곤의 대물림보다 더 무서운 주변의 대물림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변함없이 드러내고 끊임없이 주목받기를 원했다. 초등학교 동창회장부터 이것저것 눈에 띄는 활동을 많이 한다.


다시 20년이 흘렀다. 그녀는 그와 만났다. 그는 또 변해 있었다. 말투는 예전처럼 어눌해졌고 표정은 투박해졌다. 흰머리와 이마의 주름살만 없다면, 흡사 36년 전, 맑은 눈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왜, 그때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소리쳤다. 찰나의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서 기를 쓰고 뛰쳐나온 회한이었다. 그녀의 머리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가슴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 시절, 비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다 잃어버리고 가난한 그의 옆에 있었을 때가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임을.


그날, 그는 그녀가 살아온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그에겐 핑계와 남의 탓으로 들렸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원망과 죄책감이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증오의 대상이자 허영을 채워 줄 수단에 불과했다. 옛말에, 여자 인생은 남자에게 달렸다는 말을 철저히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하는 보험업도 정직하지 않게 들렸다. 말하는 족족 반대로 받아들여야 할 만큼 그녀의 삶은 모두 가짜였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능숙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망가질 수 있나 싶었다. 오래전 시샘이 그녀를 망쳤다면, 이번엔 주목받고자 하는 허영이란 괴물이 그녀의 정신을 잠식하다 못해 영혼까지 차지다. 그는 길가에 죽은 예쁜 새처럼, 영혼 없는 화려한 몸통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죽음의 원인을 깊이 생각할 뿐이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한 여인이 전생을 통해 망가져 가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보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이다. 그는 그것을 무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만약 그의 주변에서 데자뷔가 일어나려고 한다면, 그때는 막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그가 두 발 땅 굳게 딛고 살아가는 이유인지.

이전 12화 죽음은 벚꽃잎처럼 흩날리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