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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Sep 15. 2021

나도 낙산공원에 갈 걸 그랬다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종종 장소에 얽힌 추억과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자면 ‘낙산공원에 올라, 떠있는 달을 보다 문득 네 생각이...’-라든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영동대교를 건넜다, 비에 너도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와 같은 문장들 말이다. 이렇게 아련함이 꽃피는 사연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에서 어떤 감정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바로 질투다.


그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나 눈물겨운 사연보다, 그 운치 있는 장소명이 한없이 부러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낙산공원이나 영동대교 같은 데서 추억을 쌓지 않고 하필 남부주유소나 독산동 훼미리마트 같은 곳에서 추억을 쌓았느냐 이 말이다. 지역 비하가 아니라, '다음 중 추억과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시오–'했을 때 내게 주어진 단어들보다 저쪽의 낱말들이 더 곱고 맵시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어찌나 부러웠는지, 속으로 '뭐야, 강남 살고 종로 살았다는 거 아냐?' 작가들은 작품 속에선 마치 빈곤하고 상실감으로 가득 찬 영혼인양 실컷 동정과 공감을 내세워 놓곤, 진짜 삶은 물질적 풍요로 점칠 되어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흑흑 인생이란 정말 무쟈게 슬픈 거야...’하면서 부르릉- 페라리에 시동을 거는 작자의 모습을 내 멋대로 상상해 버렸다.


물론 원고 너머의 그런 진실이야 내가 알 수도 없거니와, 실제로 호사롭게 살았다 한들 그들이 겪은 사랑과 아픔이 퇴색되어야 할 이유 없다. 그저,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린 내가 ‘잘도, 그런 멋진 곳에서 추억을 쌓았겠다!’, ‘감히, 페라리를 타?(물론 내 망상이다)’하며 쉽게 언더도그마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나도 내 지난 시절을 되짚어가며 얼마나 애틋한 사랑을 했는지 열이틀 밤을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의 로맨티시스트다. 그러나 'PC방 계단을 오르다가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라든지 '와플대학 가는 길목에 불현듯 너를...'-떠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 멋대가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렇겐 못쓴다. 왜 안 되는지 콕 집어 설명하긴 힘들어도, 아무튼 안 된다. 내 감수성이라는 녀석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감하며 커 오기도 했다. 다 자란 그 녀석이 나에게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음을 울려댄다. 마치 추억을 글로 풀어놓으려 하는 자들의 세계엔 암묵적인 룰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련한 추억과 어울리는 것 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자면, [여수 밤바다, 연안부두, 혜화역 3번 출구, 덕수궁 돌담길, 한강고수부지, 뜨거운 오뎅국물, 비 오는 거리를 우산 없이 걸으며, 버스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는 돼도. [센트럴 리버빌 플라자, 구파발역 1번 출구, 여의도 증권사 가는 길, 샤부샤부 국물, 3단 자동접이 우산을 쓰고, PC방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좀 그런 것이다. ‘그와 자주 가던 놀이공원 회전목마’-까지는 허용범위 안쪽이지만, ‘그녀와 자주 가던 놀이공원 T익스프레스’-는 좀 그런 것이다. 빈부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 써내면 아른아른한 감수성 따윈 무심하게도 헤쳐버릴 것 같은 존재감 가득한 단어들이 나의 추억 군데군데 묻어있던 것이다.


누가 알 까냐마는, 그래도 굳이 거짓을 지어내서 쓰고 싶진 않았으므로, ‘그녀와 자주 가던 초코 허니브래드가 맛있던 카페’-를 ‘그녀와 자주 가던 서교동 한적한 골목, 잔다리라고 부르기도 하던 그 길...’-이라고 입맛대로 바꿔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보기 좋은 모양새로 바꿀 셈이면 나는 내 이야기를 그럴싸한 가짜 로맨스로 덮어야 했는데,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잘 포장해 낼 재주도 없었다.


그럼 이름이 예쁜 명소에 직접 가서 추억을 진짜 쌓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거짓말 안 해도 되잖아?-하는 생각으로 던진 출사표 역시 지역 맛집 탐방으로 변질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게 내 맛집 투어의 시작점이었다.)


나는 매우 먹먹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읽는 사람이 피식- 하고 김새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허둥지둥 감춰놨던 내 추억들이 퍽 가여웠다. 언젠가 들춰지길 기다리는 모습이 가련해 보다. 누군가 내게 ‘도대체 마왕님한테 편의점이란 뭘까요? 글에서 되게 자주 나오네요?’하며 물었을 때도. ‘아 그냥 자주 가서요...ㅎ’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일상의 발자취가 크게 달라질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할 때 나의 추억 언저리에 함께 서있는 사람에게도 미안했다.


사랑했던 당신, 나도 당신을 남부주유소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지 말고 남산에서 기다릴걸 그랬다. 너를 돈가스 맛집으로 데려갈 게 아니라 이름도 예쁜 라비올리 같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할 걸 그랬다. 탄생석 팔찌 같은 거 찾아보지 말고 반지를 끼워줄 걸 그랬다. 놀이터 벤치에만 앉혀두지 말고 더 멋진 곳에서 야경을 보여 걸 그랬다. 내가 바라는 모습이 내 진짜 모습과 거리가 있듯이 내가 바라는 추억도  진짜 추억과 리가 있다. 는 그 먼 간극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었다. 가련한 내 추억에 오직 당신만이 가련하지 않은 얼굴로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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