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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Oct 18. 2021

악당은 없다

어릴 적 나는 <순풍 산부인과>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같은 시트콤을 즐겨보면서 그 유쾌한 말썽과 소동 그리고 소가 늘 따라다니는 일상을 꿈꿨다. 사실 나 말고도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가정이나 일상의 화목과 행복을 소재로 한 어린이 도서들이 많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그랬다. 책의 등장인물과 성격, 그리고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등장인물은 엄마, 아빠, 나, 동생 정도. 성격도 대개 비슷하다. 든든하고 책임감 있는 아빠,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 귀여운 동생과 말썽 많지만 마음만은 착한 나. 작품에 따라 심술쟁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어차피 결말에선 다 착해진다. 책마다 전개되는 사건과 사고는 다르지만 결국 화해하고 사랑과 우정으로 극복해 낸다. 마지막 장을 펼치면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엔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마치 이런 것들이 삶의 이정표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정이나 인간관계는 결국엔 파워 오브 러브로 다 극복해 낼 수 있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 모두가 <응답하라 19XX> 같은 가족이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같은 가정이 되기도 한다. 영화 '달콤한 인생' 같은 일이야 웬만해서 겪지 않겠지만 '성냥팔이 소녀' 정도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건 허다하다.


화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목 놓아 이야기할수록 그런 모습이 아닌 사람들은 더 숨어 들어갔다. 자신의 가정사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집을 부러워했다. 과거를 숨기기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마음들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나중에 되레 삐뚤어진 방식으로 튀어나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TV나 책 속의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서로의 유대감이 더 끈끈해지기까지 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 속의 나쁜 놈들은 말로 타이를 수 있거나 알아서 개과천선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런데 어째 우리의 주변엔 도저히 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것 같은 빌런들만 득실대는지 참 희한하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봤다. 남자 친구가 기념일에 보라돌이 인형 옷을 입고 와서 이벤트를 해줬다는 것이다. 사람들 반응은 보통 ‘귀엽다’와 ‘쪽팔려서 싫다’로 나뉘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후자였던 것 같다. 그중에서 한 개의 댓글에 유독 좋아요가 많이 달려서 눈에 띄었다.


‘사랑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거예요’


좋아해서 해 건데 상대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 하지 말아야 한다니...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저 댓글을 적은 사람과 내가 같이 카페에 앉아있다면 토론쟁이가 될 것 같았다.


"상대가 어떤 걸 싫어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눈치껏 알아채요? 아니면 직접 물어봐야 하나? 그런데 싫어하는 게 뭐냐고 직접 물어보는 걸 싫어하면 어떡해요? 오빤 그런 걸 일일이 말해줘야 알아? 이런 말 들으면 어쩌죠? 그땐 정말 눈치껏 알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만일 내가 눈치가 좀 없는 타입이면 어떡하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자기는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주변사람들이 보기엔 영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이요. '우리 엄마는 생선 대가리만 좋아해', ‘우리 아버지는 닭다리 싫어해’, ‘내 아내는 명품가방 안 좋아해’ 같은 눈치 없는 말이나 뱉는 사람이 바로 나면 어떡하냐고요!"


댓글 글쓴이에게 묻고 싶은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이 앞 뒤 없이 떠올랐다. 나는 '싫어하는 일을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말이 퍽 슬펐다. 아니, 슬프다기 보단 지독하게 들렸다.


우린 각자의 마음에 '들이 여기는 넘지 말았으면...' 하는 선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쩌면 그 선을 필연적으로 무수히 넘나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싫어하는 일을 단 한 번도 안 하고서는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대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뿐이라는 모순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다른 곳에서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나를 가장 사랑해 줘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 제일 깊은 흉터를 남긴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가장 뽑히지 않는 가시를 박는 것이다.




지금은 애정이 좀 식었지만 한 때 나는 히어로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히어로 영화 좋은 점은 영웅이 있다는 게 아니라 악당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엔 반드시 미움받아야 할 악당이 있고, 처치해야 할 괴물이 있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만 물리치면 평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영웅한테 퇴치당해도 좋고, 개과천선해서 스스로 물러나도 좋다.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새드엔딩으로 끝날지는 악당의 결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실 히어로가 아니라 악당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좀 다르다. '얘는 꼭 모두가 미워해야 돼'라고 정한 빌런도 없고, 괴물이나 괴수도 없다. 근데 이상하게도 상처 입은 사람이 생기고 아픈 사람들이 속출한다. 우리의 가슴엔 큰 흉터가 생겼는데 히어로는 나타나지 않고 어떤 악당도 처벌받지 않는다. 악당이 남긴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과 기대가 우리를 할퀴고 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악당이 아니다. 악당은 없다.

 

TV속, 동화 속, 히어로 영화 속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외치는 듯하다.


'당연히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야죠'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일은 안 해야죠'

'당연히 가정은 화목해야죠'

'당연히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죠'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쪽에 서있는 사람들 쉽게 사랑이 넘치는 삶을 말다. 이상한 건 그들 중에 몇 명은 자신도 어딘가 아파 보이면서 마치 앵무새처럼 그런 이야기를 떠들고 있다는 점이다.


들의 로 고개 숙인 사람들이 보인다. 그의 모습엔 여러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 같다. 내 친구의 모습, 보라돌이 옷을 입고 있는 어떤 남자의 모습, 봉사활동에서 만난 결손가정 남매의 얼굴,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기러기 부장님의 얼굴, 울면서 가출했던 내 예전 연인의 모습... 당연한 사랑을 설파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얼굴은 더 어둡고 그늘져갔다. 저-쪽에서 말하는 당연한 사랑과 도리가 이들에겐 아주 힘들게 쟁취해야 하는 것이거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절대 못 하는 것을 상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그가 마치 악당처럼 느껴질 것이다.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악당은 이해되면 죽기 때문에 나는 악당을 죽이기 위해서 그것을 이해해 보는 상상을 한다. 나에겐 내세울만한 무력이 없으므로 악당과 카페에 마주 앉아서 대화로 한다. 대신 한여름에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악당에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준다.


선을 넘지 않는 사이, 저기 울타리 바깥쪽에서 손 흔들어 주면서 웃기만 하는 사이는 그냥 남 아냐? 오다가다 안부나 묻는 사이랑 보통 그렇게 지내거든, 사회생활하면서 만나는 사이거나. 보통 그렇지 않아? 근데 우린 좀 더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며? 그럼 좀 다르게 대해 줄 수도 있잖아. 이를테면 ‘그래 선을 좀 넘었더라도 너는 봐줄 수 있어’라든지, ‘난 원래 이런 거 싫어하는데 너라서 괜찮아’ 같은 태도. 상대방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 그럼 결국에 넘어 봐야 아는 거잖아... 너도 선을 안 넘고 나도 선을 안 넘으면 우리가 사랑에 빠질지 아닐지 혹은 내가 얘를 좋아할 수 있을지 없을지,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내가 너한테 특별한지 안 한 지 어떻게 알 수 있니? 거기에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하는 '표준 사랑' 같은 게 어디에 있어? '사랑은 ~이래야 합니다'라고? 이딴 가이드라인이 같은 거 도대체 누가 만들었어! 우리가 진짜로 맞닥뜨릴 사랑은 더 처참하고 슬플지도 모르잖아... 왜 웃기만 해? 웃지만 말고 뭐라고 대답 좀 해줘.



*표지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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