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이 글을 먼저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누가 그렇게 하라고 정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이런 글이 먼저 나오는 게 더 폼나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저의 몇 안 되는 어떤 소중한 독자님께서 '작가님이 글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어색했다는 걸 제외하면) 제일 처음 든 생각은 ‘글쎄... 뭐라고 말해야 되지’ 하는 의문이었어요. 글을 쓰기 시작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걸 말끔히 정리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 담아놨던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저는 과학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엔트로피라는 말은 들어봤습니다. 열역학에서 나온 말인데요(열역학이 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ㅎㅎ), 거기엔 '우리 우주의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라는 법칙이 있대요. 이 엔트로피 법칙이 뭐냐면, 쉽게 말해서 모든 건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다 무질서한 상태로 흩어지게 된다 라는 뜻이랍니다. 물통에 떨어뜨린 잉크가 퍼지는 것, 향수가 방안에 퍼지는 것, 뜨거운 커피가 차갑게 식는 것 등이 다 엔트로피 증가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래요. (더 자세한 건 과학 선생님께 여쭤보세요. ㅎㅎ)
이 엔트로피 증가는 우리의 일상생활과도 묘하게 연관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책상을 잘 정리해 놔도 시간이 지나면 어질러진다든지, 수업을 듣는 학생의 태도가 갈수록 흐트러진다든지, 뜨거웠던 연인들의 사랑이 식었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물론 그저 단순한 비유지만, 따로 힘쓰지 않으면 결국 무질서하게 흩어지고 만다는 점에서 엔트로피 법칙과 삶은 서로 닮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엔트로피 증가는 저의 개인적인 일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겪은 일들, 느꼈던 감정, 번뜩이던 문장, 혹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짜낸 글, 소중한 추억 등이 제 어딘가에 곳곳이 남아있지만 사실 이것은 잘 정돈되어 있다기 보단 널브러져 있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분명 그때 아름다웠는데, 이건 참 슬펐는데, 이때는 정말 기뻤는데, 이거 재밌었는데, 싶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서 내 마음의 뚜껑을 딱 열었는데...! 어라? 어느새 난잡하게 흩어져있는 걸 발견합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도 있고, 시간이 왜곡되어 버린 일도 있고, 다른 오해와 엉켜있는 것도 있는 등, 뒤죽박죽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이 또한 엔트로피의 법칙 같아요. 커피가 식듯, 책상이 어질러지듯, 제 마음도 그렇더라고요. 소중했던 것도, 사랑했던 것도 나중엔 다 희미해질 것 같았다는 뜻입니다. 종종 다독이고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쉽사리 흩어져버려요. 그래서 저는 애쓰기로 했습니다. 인상 깊었고, 때론 슬펐던 일들을 식어버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제가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을 사라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그게 제가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느냐’고 물어보신다면 ‘간결하고 진한 글’을 쓰고 싶다... 고 말하고 싶은데 이 느낌을 표현하기가 참 어렵네요. 그 대신 제가 읽었던 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그 편이 빠르겠어요. 어떤 책에서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이야기는 바람과 같다. 흔들리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혹은 다른 책에서는 이런 문장도 읽었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한 자리에 붙박이로 놔두면 나중엔 보이지도 않아.' 꼭 문학에서만 발견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제경영서 같은 데에서도 봅니다. ‘재료는 공정을 거칠수록 가치 있는 상품이 되어야 한다.’ 저는 이런 문장을 읽을 때 어쩜 삶과 경험을 이토록 간결하고 진한 언어로 표현했는지 감탄합니다. 이런 글을 발견하면 ‘통찰이 날카롭다’, '깊이가 있다'따위의 흔한 표현이 아니라, 칭찬하는 사람도 이 감동에 걸맞은 표현을 찾아내서 찬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물론 그렇게 못하지만요)
아무튼 제 글도 그런 문장들로 짜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 제가 남기려고 하는 것들도 제 곁에서 오래도록 선명하게 살아 숨 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냥 시간순으로 글을 나열하거나, 너무 격한 감정으로 쓰거나, 정보를 전달하듯 써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더 깊게 파헤쳐서 써야 하는 것도 있고, 쓰지 말고 덜어내야 할 부분도 있더라고요. 예전엔 분명 잘 썼다고 생각한 글이 이제 와서 보면 영 별로인 것도 많고요.
예를 들어 슬펐던 일을 떠올리며 슬픔에 대해 썼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그다지 슬픈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미웠던 일을 떠올리며 미움에 대해 썼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이 혹시 이게 사랑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당시에 제가 보고 느꼈던 게 어떤 사건의 단면이었다면, 그것만 가지고는 글을 쓸 수가 없기에, 쓰면서 요모조모 입체적으로 뜯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신기한 건 그렇게 단면 너머를 알게 되면 계속 슬픈 척, 미운 척하면서 마저 써내려 갈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좀 더 잘 써보자고 시작한 일들입니다. 무엇을 더 캐낼지, 무엇을 버릴지 생각해 보는 일이요.
아울러 내가 내 마음 하나만큼은 잘 살펴서 쓰는지도 확인해 봅니다. 제 프로필에 적어놓은 이상한 말도 바로 이런 탐색에서 이어진 일입니다. 마음은 상상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실을 기반으로 한 논픽션이라고 해야 하는지, 예전엔 ~그런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마음이라면? 만약에 미래에 또 바뀌게 된다면? 이 마음은 언제부터 픽션이라고 해야 하고 언제부터가 논픽션이라고 해야 하는지, 픽션과 논픽션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그걸 제대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건지...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도 답은 내리지 못했고요.
제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을 희미하게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슬픔을 슬픔인 채로, 사랑을 사랑인 채로 두고 싶어서 씁니다. 잘 쓰면 좋고요. 부지런히 쓰면 더 좋고요. 그리고 제 글이 누군가에게도 반짝여 보인다면 더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