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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Oct 21. 2022

당신에게 보낸 샌드위치

한 번은 당신이 코로나에 걸려서 자가격리가 된 적이 있었다. 처음엔 출근 안 하게 돼서 좋다던 당신이었지만, 고작 격리 사흘 만에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서 갑갑함을 호소했다.


"지금 내보내 준다면 야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당신이 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귀엽기도 했다.


나는 심심해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집 앞에 찾아가서 말동무가 되어주기로 했다. 물론 집 안으로 들어갈 순 없으니 당신의 방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에 좀 떨어져 앉아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행히 당신의 집이 연립주택의 일 층이었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있을 만한 화단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편법이었다.


당신의 집에 가기 전에 나는 마트와 빵집에 들러 당신이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를 골라 담았다. ‘좋아할 만한 걸 골랐다’는 표현 때문에 당신의 취향을 위하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그건 새로운 간식을 골라보고 싶은 나의 도전 욕구에 가까웠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나를 칭찬해 주길 바라는 기대심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해 본 간식들이 맛있었냐?라고 묻는다면, 성공률은 절반 이하로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늘 무언가 해주고 싶게 만드는 건 다 당신의 리액션 덕분이다.


예전에 마트나 슈퍼엔 팔지 않는 외국 과자를 이것저것 들여와서 파는 가게들, 이른바 ‘세계 과자점’이 유행처럼 생겨날 때 외국 과자를 한 아름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신이 “헉! 이런 맛은 정말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라고 해 준 게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직접 사과를 갈아서 수제 사과잼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때도 “저는 이제 사 먹는 잼은 못 먹을 거 같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어주기도 했다.


라면을 사다 준 적도 있다. 터번을 쓴 너구리 캐릭터가 그려진 포장지가 너무 귀여워서 사다 줬다. 그날 저녁에 사진을 찍어 보내면 “이걸 보세요! 라면 안에 들어있는 고명(나루토마키)도 너구리 모양이에요!” 하며 기뻐하던 당신의 모습도 떠오른다.


과자 맛이야 비슷한 걸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잼도 사 먹는 게 더 맛있다. 라면에 들은 고명이 신기해봤자 고명일뿐이다. 나도 다 알지만 항상 애정을 듬뿍 담아 고마워해 주는 당신 덕분에 나는 사용한 것에 비해 늘 넘치게 마음이 찼다. 그 넘친 것들로 인해 나는 도전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그날 당신의 집에 사 간 건 과자 몇 개와 빵집에 새로 나온 샌드위치였다.


나는 마치 능숙한 배달기사처럼 격리자가 된 당신의 현관 문고리에 간식을 걸어놓고 문을 두 번 ‘똑똑’ 하고 두드렸다. 이윽고 당신이 ‘빼꼼’ 하고 손만 내밀어 그것을 가져갔다. 나는 화단으로 가서 걸터앉았다. 당신은 방의 커튼을 걷고 다소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창문 옆에 꽤 그럴싸하게 식탁을 만들어 보였다. 식탁보도 깔고, 식탁 매트도 놓고, 무드등도 켜놓고. 그걸 창문 너머로 보니 영락없이 오래된 레스토랑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당신이 봉지에서 하나하나 간식을 꺼냈다. 희뿌연 창문 때문에 표정까지 선명하진 않았지만,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당신이 연신 엄지를 치켜들며 웃어 줬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다 지난날의 일이다.


***


저녁거리를 사려고 빵집에 들렀는데 샌드위치 판매대에서 우연히 예전에 당신에게 사다 주었던 샌드위치를 발견했다. 그 걸 맛있게 먹던 당신이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그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계산대 위에 올렸다.


빵 봉지를 들고 털래털래 집으로 가다가 문득 어두컴컴한 집에서 혼자 저녁 먹기가 싫어져서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기네스 한 캔을 따고 샌드위치 뚜껑을 벗겼다. 축축이 젖은 빵 틈으로 양념이 삐져나와 손가락에 묻었다. 양념을 한 번 빨아먹고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었다. 양념은 시큼하고 안에 든 재료는 맛이 없었다.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이딴 게 무슨 신메뉴냐.


갑자기 눈물이 났다. 빵이 맛없어서 그렇다. 이런 걸 먹고 웃어주던 당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입안에 샌드위치를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소리로 ‘너무 맛있는데요?’ 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빵이 맛없어서 눈물이 났다는 건 핑계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그게 맛있었어도 아마 눈물이 났을 것 같기 때문이다.


빵을 먹다가 눈물이 났다. 그저 맛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빵 만으로도 당신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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