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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Aug 18. 2023

등 뒤의 포스트잇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서로의 등 뒤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은 거기에 ‘철수♡영희’ 같은 사랑이야기를 적어 붙이기도 했고, ‘바보’나 ‘메롱’ 같은 장난기 가득한 메모를 적어서 붙여두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로 후자였고요.


이때 친구가 눈치채지 못하게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저와 친구들은 마치 물어볼 말이 있거나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의 등을 톡톡 치면서 은근슬쩍 붙이는 방법을 주로 쓰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놀이의 백미는 친구가 결국 그 포스트잇을 발견해 내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것을 들키고 싶은 마음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친구가 그 포스트잇을 발견하면, 저는 숨어서 그것을 읽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거나, 멀리서 그것을 읽고 있을 그 애의 얼굴을 몰래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은 사람들에게 이런 장난을 칠 수 없지만, 가끔 그때의 놀이가 그립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당사자 앞에선 잘할 수 없을 때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약하고, 게으르거나 나태하기도 합니다. 고민이나 겁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렇게나마 당신의 등 뒤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헤어진 연인에게 그립다고 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짝사랑하던 이에게 잘 지내라고 남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보고 싶다고 전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화해하고 싶은 이에게 미안하다며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진짜 제가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일수도 있고요.


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쓰고 붙이겠지만, 누구에게 쓰는 것인지, 누가 쓰는 것인지 그것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누가 되었든 포스트잇을 적는 이는 ‘저’라고 하겠고, 이것을 붙여놓을 등은 ‘당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독자의 상상을 위해서인 척 썼지만, 순전히 그 때문인 건 아니고요. 저의 열없는 마음을 이런 모호한 낱말 뒤로 감추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이 메모들을 발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그리고 혼자서 당신의 얼굴을 몰래 상상해 보기도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 메모를 발견한 당신이 저를 찾아오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온다면 저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겠지만 혹시 제가 운다면, 왜 직접 말하지 못했냐고 저를 너무 나무라지는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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