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안부

by 마왕

육 년 하고도 이 년 전에, 그러니까 내가 딱 너만 한 나이였을 때 말이야. 나는 이런 동남아로 떠날 생각도 못 했다 얘. 그나마 멀리 가본 곳이 동경이나 청도였어. 아니다, 청도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안쪽까지 한참 더 들어갔던 제남인가 하는 곳이 가장 멀었지. 그때 청도에 잠깐 머물렀을 때 마셨던 맥주가 아주 기가 막혔는데. 아이고, 아무튼 그 얘길 하려던 게 아니라. 나는 어렸을 때 동남아가 잘 못 사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여행으로 가봐야겠다는 엄두도 못 냈었어. 나도 참 나지. 그러다 막상 거길 가니까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서도 그냥 거기 사람들 얼굴 보기가 좀 그래. 사람들이 눈 마주치면 웃어주고, 말끝마다 항상 사와디캅-, 사와디카- 하는데, 괜히 미안한 거 있지. 전에 못난 마음먹었던 거 다 죄책감으로 받는 거지 뭐.


나는 태국에 갈 때 친구들이랑 함께 갔는데 같이 간 애들이 다 좋아서였는지 힘들다거나, 뭐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하나 안 들더라. 너는 어떻디? 태국 가기 얼마 전인가, 내가 손으로 오카리나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거든? 그리고 여행 가서 내내 손으로 그거 불면서 다녔더니, 친구들이 아주 질색하던 모습도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 어디 나만 웃겼나, 친구도 가관이었지, 그쪽 사람들이 배가 작아서 그런지 식당에서 국수를 곱빼기로 주문해도 양이 영 성에 안 차더라고. 하루는 그걸 보고 잘 먹는 내 친구 하나가, 이게 양 많이 준 게 맞냐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묻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바다 건너 외국 나와서도 "양 많이!"를 외치고 있는 우리 모습이 좀 웃겨서 그랬던 거 같어. 요즘은 국밥집에서도 잘 안 하는 말이잖아. 그때 가서 찍은 사진 보면 우리 애들 얼굴이 다들 활짝 웃고 있어. 뭐가 그리 신났는지. 나는 사람을 웃기는 일이 좋았지, 어딜 가든 ‘웃기다’라는 말 듣는 게 좋았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웃겼던 건지 다들 웃음이 많은 사람들이었던 건지 잘 모르겠네.


너 왜 그렇게 멀찍이 가있어. 이리 좀 바짝 와라, 내가 네 손을 잡아봐도 되겠니? 얼굴을 만져봐도 되겠니? 요즘 사람들은 손 한 번, 머리 한 번 쓰다듬는 일을 두고 남녀사이에 할 짓이다 못할 짓이다 말들도 많은 것 같더라. 가만 듣다 보면, 어느 땐 이 사람들 말이 맞는 거 같다가, 어느 땐 저 사람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얼마 전에는 그걸로 꿈도 꿨지 뭐니. 그 꿈 얘기는 나중에 또 시간 날 때 해줄게. 그런데 나는 이렇게 손도 대보고 살도 쪼물락 거리면서 누가 내 옆에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기도 하고,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그러더라. 에구머니, 피곤하니? 내 정신 좀 봐, 내가 졸린 사람 붙들고 늦게까지 말이 너무 많았지. 내가 여기 바닥에서 잘 테니까 네가 저기 따뜻한데 올라가서 자렴. 자다 일어나도 나랑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 내일 어디로 더 멀리 간다고 그랬지? 우리가 다시 볼 수 있겠니? 내가 또 만나러 와도 되겠니?





무안에서 끝내 겨울숨처럼 스러진 분들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해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