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자는 말

by 마왕

나중에 얼굴 한 번 보자, 다음번엔 네가 사면 되지, 조만간 밥 한 끼 하자, 언제 술 한 잔 해, 나중에 한 번 들를게, 시간 되면 한 번 놀러 와, 편할 때 얘기해, 슬슬 뭉쳐야지, 보러 갈게, 연락할게, 또 봐.


영등포 노폿집에서 스친 중학교 동창이랑도 하고, 김 부장한테 깨지고 온 회사 동기랑 가맥집 나서면서도 하고, 시골집 홀몸으로 남아계시던 아부지에게도 하고, 결혼해서 이제 애가 돌이라는 영수랑 헤어질 때도 하고, 나 좋다고 쫓아다니던 뽀얀 얼굴 미숙이 취업했다고 울면서 미국 갈 때에도 하고, 저기 바다 보이는 곳에 눕고 싶다던 우리 엄마 산소 가서도 하고.


내가 어디선가 했던 많은 기약 없는 약속들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달력 어느 한 곳에 맺히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다가 우연히 한두 번 어떤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모호한 약속들을 하기를 좋아하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기약 없는 약속 뒤로는 만나고 싶은 마음이나 만나기 싫은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나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말하고 싶은 마음이나 말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을 모두 숨기기 편해서 그렇다고 했고요.


철없게 부끄러웠던 시절, 나는 당신과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꿈에서도 또 보자고 했던 말은 어째 그리 잘 지키고 싶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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