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운동장에서 가지고 놀던, 문자 그대로 바람같이 달리던 내 미니카가 어느새 꺼져갔다.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다. 건전지를 바꿔보고 흙먼지를 털어봐도 마찬가지다. 모터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모터를 바꾸면 해결될지도 모르지만, 그게 그전과 같은 미니카는 아닐 것이다. 버리고 나중에 다른 것으로 바꾸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숨겨두었다가 들켜서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했다.
신림동에서 과일가게 하시던 삼촌이 나 초등학생 때 선물로 사줬던 햄스터가 있었다. 챗바퀴도 놓아주고, 춥지 않게 톱밥도 자주 갈아주고, 영화에서 본 이름을 따서 ‘도리스’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베란다가 추울 것 같아서, 가끔 우리에서 몰래 꺼내어 방에 풀어 놓다가 혼나기도 했다. 도리스는 그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두 손으로 부드럽게 포개어 주면 혹시 살아날까 싶었지만 숨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나무 밑에서 묻지도 못하고 엉엉 울던 날이었다.
저마다의 시간이 있다. 미니카도 도리스도 제 시간이 다한 것이다. 제 시간이 다한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별의 때가 오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그렇다. 육신의 시간이 다하거나, 인연의 시간이 다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렸을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몰래 숨겨두거나, 어디 묻지도 못하고 우는 일 뿐이다.
최근에 나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다가, 말미에 ‘앞으로 수없이 명멸하는 인연들이 있겠지요’라고 적었다. 만남과 흩어짐이 있고, 웃음과 울음처럼 시시콜콜한 사연들이 일기도 하니까. 그러다 떠나거나 남는 것들도 생긴다. 그래도 그다음의 이야기는 찾아온다. 헤어지고 나서도 제 시간이 아직 남은 것들은 그것을 마저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저기에서 이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먼 길, 험한 길 넘어와도 아주 길을 잃는 법은 없어서 언젠가 우릴 만난다. 그래도 나는 다음으로 가야겠지. 어딘지 모를 곳이라 무서워도 가야지. 어두워서 닿을 데를 몰라도 가야지. 울면서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