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 울면서 낫듯, 살면서 우는 것은 생에 필시 벌어질 일이므로, 조금 과히 말해서 산다는 건 울음을 우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픔을 겪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일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아프면 슬프니까. 아픔과 슬픔,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그런 생각을 깊게 하다가, 사람에게 일어날 슬픔을 둘로 나눠보기로 했다. 하나는 나로 인해 말미암은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관계없이 바깥에서 찾아온 슬픔이다.
슬픔의 정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눈에 보이거나 혀로 전달되는 맛처럼, 오감으로 바로 느껴지는 게 좋겠다. 잉크나 소금을 상상해 본다. 용매(溶媒)에 희석되어 묽어지는 것들. 슬픔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도 이것들처럼, '농도'라고 해보자. 이들은 물에 녹거나 퍼지겠지만, 슬픔의 경우엔 물의 역할을 하는 건 시간이 될 것이다.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아무리 큰 슬픔이라도 결국 시간을 이길 순 없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라 할지라도 그걸 품고 있는 본인 또한 죽는 날이 찾아올 테니, 결국 산산이 흩어지는 걸 피할 순 없다. 둘째, 슬픔의 종류와 농도는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 주어진 대로 받아야 하는 수밖에 없다. 셋째, 내 것이 아닌 슬픔을 대리로 슬퍼해 줄 순 없다. 곁에서 잠깐 어울려줄 수는 있겠으나, 끝내 그걸 떠안고 살아야 하는 일은 오직 본인에게 귀속된다.
어차피 우리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면, 버티는 일은 오롯이 당신만이 해야 한다면, 서로가 할 수 있는 건 잠시 같이 울어주고, 오래 빌어주는 일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안 겪을 수는 없겠지만, 짙은 슬픔 말고 옅은 슬픔으로 오기를. 쿵쿵- 바깥에서 무섭게 찾아오는 슬픔 말고, 차라리 내 탓으로 후회하고 마는 슬픔이기를. 그런 걸 빌는 일.
애인과 헤어져야 하는 일, 궁핍해지는 일, 기르던 개가 죽는 일, 태어나서 큰 병을 앓아야 하는 일, 사고로 자식을 잃은 일, 엄마와 아버지가 없이 자라야 하는 일, 따습지 않은 방에서 겨우내 추위를 맞이해야 하는 일, 청각장애가 있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줄 수 없는 일. 저마다 사연을 빛 삼아 힘껏 살아내는 이들도 있다.
도처에 널려있는 이토록 여리고 작은 빛이다.
너무 멀어서 안 보인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매일 당신의 울음을 멀리서 듣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