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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Oct 29. 2019

이발소, 미용실 이야기

기억이 가물 거리지만 수년 전 이발소에서 머리카락 정리하는 것을 접고 처음 문턱이 높은 미용실(미장원)(남자가 미장원을 다닌 다는 게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을 다니게 된 이유는 그 당시 미용실과 달리 이발소는 물 먹은 뜨거운 수건을 얼굴에 덮고 수염을 불린 후 조금 무섭기도 한 날카로운 면도칼로 안면을 깨끗이 면도를 해주는 것과 나이가 적당히 들어주신 아줌마가 안마와 함께 귀찌를 파주는 것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인지 대학교 다닐 때 인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귀속 피부가 남들보다 예민한지도 모르고 귀를 파줄 때 소심한 성격에 아프다 하면 창피할 것 같아 미련하게 참았다. 결국 참은 게 화근이 되어 귀속 피부가 상하고 그때부터 적지 않은 양의 물이 귀속에 고이고 아팠다. 그 이유로 트라우마가 생겨 이발소에서 미용실로 갈아탄 듯하고 후유증으로 지금도 수년째 한두 달이면 귀속에서 나온 물이 굳어 귀가 막히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다.     



호랑이 담배 필 시절인 70년대에 우리 마을에 머리를 정리하는 방법은 아주 멀리 떨어진 몇 마을을 대표하는 이발소에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가는 것이었는데, 그 이발소는 개울 건너편 마을 당산나무 옆 조그마한 건물에 있었으며 내부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키가 작아 의자에 앉으면 의자 등받이 아래로 머리가 가림으로 이발사가 널찍한 나무판을 의자 팔걸이에 걸치면 나무판에 앉았다. 그다음 절차로는 머리카락이 잘 붙지 않도록 매끌한 보자기로 몸을 감싸면 나는 눈을 지그시 내리 깔았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짧은 까까머리 학생으로 멋지게 변신이 되었다. 이발소에 대한 뚜렷한 기억중 하나는 면도하는 장면으로 50센티 정도 되는 가죽 끈에 면도칼을 앞뒤로 쓱삭 문질러 날카롭게 가는 것과 면도거품을 발생시키기 위해 둥근 붓에 비누를 묻히고 장작난로 위에서 데워진 물통에 붓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비누거품의 온도를 적당히 높인 후 아버지, 할아버지 들의 얼굴에 칠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체온에 비슷한 거품을 만들어 면도자의 불쾌감을 줄이고자 하는 이발사의 배려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몽땅하게 생긴 머리감기게용 물조리개도 생각나고.      

         

시골에서 이발소를 오랫동안 가지 못하는 때는 동네 형들이 마당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이발기(바리깡)로 서로의 머리를 깎아 주곤했다. 철로 된 이발기는 겨울철에는 아주 차가워 목 쪽 피부에 접촉을 하게 되면 찰나적으로 깜작 놀랄 감촉을 느낄 수 있는데 아직까지 그 촉감이 기억하고 있다 것이 놀랄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할 때마다 이발기의 차가운 느낌을 기억하고 기대하지만 요즈음은 플라스틱 재질에다 난방이 되어 있음으로 기억 속의 그리운 감촉을 소환하기는 가당치 않음으로 이제는 덮어 감추어야 할 세월이 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어느 날 미용실 원장님의 솔깃한 파마 제안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사무실에서 파마 이후 동료 직원들에게 시달릴 만만찮은 후폭풍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 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오늘, 미용실에서 "옆, 뒷머리 짤게, 앞머리 길게 해 주세요 “라고 말했더니 앞머리를 주문보다 길게 두어 약간 기형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도 실패다.     

  

어쩌냐? 머, 한 달 후에 재 도전......          


이발 실패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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