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었다

역지사지

by 바다 김춘식

사무실에서 오후 네 시경이 되면 배가 고파 속 쓰린 날이 허다하다. 위장이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나 고생도 개고생이라 그러하지만 식사 시간의 배분에서 오는 부작용이라 여긴다.


일곱 시 반에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근하여 오전일 얼렁뚱땅 마무리하면 으레 1140 정도면 도시락을 까먹는다. 점심시간이 1200에서 1300이지만 배 고픔에 보통 10분에서 20분 정도 땡겨 먹는 날이 많다.


1200에 식사를 마치면 대충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 네다섯 시 되는 것이다. 예상외로 육체적 노동에 비할 길 없지만 전화통화와 꼬리를 무는 회의로 기싸움을 하다 보면 진이 빠져 배가 쉬이 고파온다. 퇴근 시간이 6시니까 점심과 저녁의 시차가 커 네 시경에 쓰린 허기가 밀려오는 게 당연도 하긴 하다.




알바에게 빵을 사 오라 시킬랬더니 사무실 주변에 빵집이 없댄다. 그렇다고 딱히 편의점 빵은 내키지 않기도 했다. 직원을 시킬려하다 요즈음 갑질에 예민한 사회적 분위기라 겁도 나고 해서 배고픔을 그냥 참기로 했다.


직원끼리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뽀시락 비닐봉다리 하나를 배달받아오는 것 같았다.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실장님, 빵 드시죠"라는 말에 움찔 놀라 고개 들어보니 비닐 봉다리가 제과점 것이었다. 우짠 일인지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배달을 시켰다나 머라나. 빵집도 배달된단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역시 똘똘한 젊은 애들은 꼰대와는 달랐다.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고 빵을 나누어 먹는 시간이 다섯 시를 넘고 있었다. 이 시간때 먹는 게 애매하게 고민이 된다. 단것을 잘 안 먹는 취향도 한몫했지만 지금 먹어 버리면 저녁은 아예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맛이 없거나 못 먹거나.


기미상궁처럼 이것저것 몇 개의 쪼가리를 뜯어먹고 남을 것 같아서 "재들이 먹다 남으면 포장해 두었다 내일 먹어야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보기에도 양이 꽤 많아 보였다. 그런데 다시 자리에 복귀해 일을 하다 얼마 후 얼마나 남았을까 싶어 탁자 위를 힐끗 쳐다보고는 깜작 놀라고 말았다. 깔끔하게 빵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정네 세 명이서 해치운 것이었다.


아! 이게 사람의 입장차, 생각차 구나 싶어 후다닥 놀랐다.


나는, 내 생각으로는 우선 빵이 달았고, 양이 많았고 또 빵을 배불리 먹으면 저녁을 못 먹던지, 맛이 없을 것이라 단정 내린 거였고, 당연히 직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 걸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단것을 좋아했고, 빵을 먹어도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젊은 배가 있었기에 저녁 걱정 없이 맛나게 냠냠 먹은 거뿐이었을 것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철저하게 골라 들어 유리하게만 판정하며 다름을 틀리게 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남은 것 내일 먹을 수 있도록 포장해 놓아"라고 말로 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던 게 얼마나 다행 스러웠던지. 만약 말로 했다면 우리 젊은 직원들 얼마나 황당해했을까?


다음날 아침 물었다."너희 어제저녁 먹었어" "네". 이 대답으로 게임은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