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코
한순간 부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12년 전 많은 것은 잃었고, 평생 큰애에게 큰짐을 지고 삽니다. 꽤 긴 세월이 흘러 잊을만할 때도 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피꺼솟에 트라우마로 치를 떱니다.
그 사건 이 후 그 일에 대해서는 집에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고, 궁금하기는 하지만 행여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날까 봐 아직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큰애에게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인천 이전 근무지가 순천이었는데 직장 상황이 좋지 않았었고, 마침 우리나라 최초 쇄빙선 건조, 운영에 필요한 인력 모집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습니다. 그때 큰애가 초6이었습니다. 순천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6학년이니까 친한 친구도 있었고, 졸업장도 인천에 전학 간 학교에서 얼마 안 다니다 받는다는 게 의미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행정이란 게 기록에만 남으니 정체성 문제도 걱정이 되었더랬죠.
결국 순천에서 졸업장을 받고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타지에서 졸업을 하게 되면 인천에서 중학교가 정식으로 배정되는 것이 아니고 전학이 되더군요. 기억으론 행정절차를 밟고 학교에 간 것이 개학 후 2일 만이었어요. 그 2일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사건이 터지고서야 2일 차이로 시골 전학생이라는 딱지가 붙여 얕잡아 괴롭힘이 시작된 거지요.
학교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맞고 다니고, 돈 뺏기는 학폭을 당했다고 말입니다. 큰애가 발각된 게 아니고 다른 학생들이 걸렸는데 조사하다 보니 큰애가 나온 거이라 했습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요.
보복한다는 말에 한 달 넘게 용돈 다 갖다 바치고, 모자란 돈은 동생에게 빌려 상납했다 했어요. 여중생이었는데 옆동네 남중생이랑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보복이라는 협박에 말도 못 하고 두려움에 떨었을 큰애를 생각하니 미안함에 폭풍 분노뿐이었죠. 학폭이 우리에게 닥쳐질 일일 줄 몰랐습니다. 급히 담임 선생님께 연락해 분노에 퍼부었지만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큰애 전화기에 저장된 전화번호로 연락해 남중생 두 명을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고 옷 속에는 몽둥이를 숨기고 갔습니다. 내가 죽던 게네들이 죽든 하였겠지요. 다행히도 덩치가 큰 두 명에게 협박반 달램반 하여 다시는 연락도 보복도 안 한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지금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하지 못한 게 후회 스럽긴 합니다. 나중에 두 명 모두 주x아파트에 살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화가 치밀어 그 후로 주x아파트 근처에 얼마간 안 갔습니다.
며칠 등하교는 불안 속에서 엄마가 밀착 동행했습니다. 덕택에 큰 사건 없이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비록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큰애는 잘 자라 올해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최근 운동선수, 연예인 학폭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합니다.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 나니까 말이죠. 적은애에게 요즈음 학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보니 우리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만큼 그 들에게는 현실적이었다는 거겠죠.
진질성 있는 사과를 바라는 학폭 피해자가 대부분인데요. 진실성 있다 없다를 판단할 기준도 없을뿐더러 반성하고 있는지도 의문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놈, x들이 지금 나타난다 해도 진심 같은 포장된 사과는 바라지 않습니다. 진심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딸에게 찾아와서 바닥에 무릎 꿇고 두 손 비비며 용서해달라 30분 빌면 용서를 고려해보겠습니다.
학폭은 결단코 당사자와 부모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짓으로 용서되지 않아요. 어떤 이유로도 하지 말아야 하고 가해자에게는 강력한 처벌도 따라야 합니다. 부모도 이렇게 평생 트라우마로 사는데 당사자들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