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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Aug 12. 2021

전하지 못한 진심

주당으로 가는 길

술 그거 거의 50년을 하지 않았죠 아니 못했죠. 어쩌다 소주 한잔, 맥주 한 캔이면 치사량에 뽕 하고 스스로 꼬꾸라져 줌 십니다.


회사 회식이란 회식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시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주당들이 안 불렀어요. 그것이 느린 정보 습득의 단점도 있었지만 정보를 선점한다 한들 대세는 바꿀 수 없는 게 대부분이라 미리 알아서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좋킨하데요.


다만 그 시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직급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의 상실이란 게 맘에 걸리긴 했지요. 너거롭고 관대한 술 문화에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그때만 해도 고가점수는 저녁 여섯 시 이후에 결정되었으니 말이죠.


술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기억은 3년 전쯤에 Y라는 친구가 술 안 마심 안 놀아준다 해서 심심풀이 같이 놀며 한두 잔 마시기 시작한 것이네요.


신빙성 없다 보인 "평생 지랄 총량의 법칙"이 신통하게 맞아떨어지는지 Y를 따라다니며 한두 잔 마신 것이 점점 주량이 늘어 남에 젊었을 때 못했던 지랄을 나이 들어하게 되나 봅니다. 그리 어렵게 성취한 게 소주 석 잔에, 몸상태가 좋으면 맥주도 750cc 정도는 거뜬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타락천사라도 본 듯 깜작 놀라키게 하는 기적을 이룬 셈입니다.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당에 비견하면 고깐 소주 몇 잔은 조족지혈이겠으나 그로 인해 이제 회식이 두렵지 않았고, 알코올 기운이 몸에 퍼지는 짜릿함과 아딸딸한 상태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야 신세계를 본다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네요. 두 달여를 맥주 한 캔을 매일 털어 넣고 세상 편히 주무셨더니 육안상으로도 표가 왕창 나게 허리둘레가 불어나는 낭패를 만났어요. 그러니깐 주량뿐 아니라 옆구리 살도 덤으로 모셔진 것입니다.


타이어 찬 허리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샤워시간이 싫어졌어요. 몸에 나쁜 게 꼭 맛은 있다 했는데 역시나 맛난 것은 아주 나쁜 부작용이 있나 봅니다.




심각한 부작용 염려에 음주를 일시 중단하고자 단단히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그 나쁜 맥주가 땡기네요.


생뚱맞게 너튜브 보다 BTS에 꽂혀 "어느 쪽이 더 아플까?"라는 사소한 물음이 이유인데요. "전하지 못한 진심. 너무 많이 전한 진심".

별것 아닌 질문 때문에 작심 3일을 지킨 금주는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늦어 버린 밤에 BTS의 "전하지 못한 진심"의 음원을 들으며 특별히 두 잔의 소주 혼술에 취해 버렸습니다. 그나마 맥주를 선택하지 않아 다행이긴 합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늦게 배운 도둑질이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록 옆구리 살이 대폭 늘어 걱정스럽긴 하지만요. 지금 알았는데 맥주보다 소주가 쓰고 다네요. 주당의 길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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