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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Feb 03. 2022

영웅씨에게 뺏긴 가족사진

어르신들의 아이돌

설날 휴일도 길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이동이 적었는지 인천에서 대구로의 명절 이동에 역대급 시간이 단축된, 마음은 코로나로 불안했지만 편안한 명절이 되었습니다.


가족 모임 참가 인원수 제한, 이동 최소화 및 외부 식사는 하지 않기로 지침을 정해 이동을 결정했지만 하루 전날까지 갈등의 갈등으로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어요. 움직이자니 오미크론이 시시각각 턱밑까지 조여 오는 시국이 무서웠고 안 가자니 손녀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아들을 기다리는 어미니의 섭섭함을 감히 감당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함에 첫날은 깔끔한 엄마표 밥을 냠냠 맛나게 먹고 그동안 이런저런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보통의 명절 분위기로 편안하게 쉬었습니다. 거실의 엄청난 변화에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다음날 허전한 듯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어 스캔을 했습니다. 그간 보지 못했던 빨간 기념품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무엇이냐고요? 네, "임영웅" 기념품(굿즈)입니다. 놀랍게도 기념품 아래 수년간 자랑스럽게 놓여있었던 큰아들이 있는 가족사진 액자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어머니의 인생 중요도에서 쉽사리 자리를 내어줄 물건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어, 영웅에게 밀렸네, 이게 머선 129?"  빵빵 터졌습니다. 콘서트에 다녀온 듯했습니다. 트롯 연예인으로 인해 효 콘서트만을 모셔야 한다는 편견이 어느 정도 해소된 줄 알고는 있었지만 부모님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눈치에 표를 못 냈을 뿐이죠.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가 시청률이 꽤 높다는 공공연한 이유도 어머니에게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늘 도망가" 임영웅 효과라네요. 그 노래 한번 듣고자 시청률을 올린다 뜻입니다. 이쯤이면 부모님들은 항상 생선 대가리만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게 증빙되었다 보아야겠지요. (죄송합니다 세상의 부모님, 용서해주세요. 이젠 그러지 마세요)


트롯 열풍으로 티브에 방송되는 트롯에 지겹다 하여 이제 그만을 외친 게 왠지 오늘따라 좀 죄송해집니다. 지겹다  하더라도 그러는 게 아니었네요. 트롯 열풍은 이제껏 하고 싶었던 것을 나이라는 편견에 갇혀 살던 우리의 부모님을 좀 더 세상 밖의 재미로 끌어 낸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이제 영웅씨에게 벽 네 귀퉁이를 모두 내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결코 서운하지, 서운해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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