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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May 09. 2022

꽃을 든 남자

매우 궁금한 게 있었다. 진짜 여자(사모님)님들은 꽃보다 현금을 좋아할까 하는 것이다. 가끔 티브에 보면 "꽃보다 현금"이라 하는데 웃기고자 하는 예능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렵다. 어쨌든 "꽃보다 현금"이라는 명제에 대한 나의 불신은 매우 컸다.


아라온호가 195일의 남극 항해 끝에 부산 영도 국제크루즈 터미널에 입항했다. 남극이란 게 늘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곳이기도 하고 코로나의 남극 유입 차단을 위한 어마 무시한 방역으로 승무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마음 같아선 격려금이라도 팍팍드리고 싶지만 적은 보답의 조촐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환영

환영행사에서 언제나 옳다는 꽃다발 증정, 행사 인원에 슬쩍 끼여 여분의 꽃다발 한 묶음을 받았다. 진실의 수작은 인천에서 부산에 갈 때부터 직원에게 신신부탁을 했을 터이다. '마지막 한 개는 나 줄 것'.  행사가 끝나고도 줄곧 가슴에 꽃다발을 안고 꼬박 이틀 부산을 돌아다녔다. 편의점도, 피아크도 문제없었다. 오래전에는 그런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마냥 신나고 좋을 뿐이다. "꽃에 진심이시네요". 같이 다니던 직원이 한마디 툭 던진다. 기분 좋게 들렸다.


부산역, 꽃으로 물들다 ㅋ


꽃이 좋다. 꽃을 좋아한다. 디X 광고를 보았다. 온갖 이쁜 꽃들이 동산에 뒤덮어 피었다. 그 꽃들 사이에 모델이 누웠다.  로망이다. 텃밭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 삼계절 꽃을 심을 것이고 그 틈에 살포시 누워 뭉개구름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려 한다.


로망, 버킷리스트.


K에게 꽃 얘기를 했더니 측은하다 한 다발 준다 했는데 이리저리 붕붕 기분 좋은 술기운에 까맣게 잊었는지 아무 말도 행동도 없다. 난 기억이 아주 또렷한데 아무 말하지 말고 기다려볼까.  한 다발 기준이 백송인걸 알면 좋겠다. 향기는 은근 달콤해야 하고, 요란한 색보다 은근한 물감 빠진 색이 좋으며 배달은 사양이다. 직접 한 아름 가득 눈을 맞추며 안겨줘야 한다.


마음 울적한 날에 향기로운 프리지어가 좋다더라. 여전히 현금보다 꽃이 좋은, 꽃을 든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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