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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Sep 24. 2019

삼류인생에서의 틀림이 아닌 다름

나는 삼류였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전에 고속버스나 기차를 탈 때면 심심풀이가 계란이나 사이다라는 것은 보편화된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옛날의 이야깃거리이다.
그런데 숨겨진 기억을 소환해보면 그 심심풀이에 종이 신문도 추가되었다. 정류장 매점 가판대엔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 메이저 신문 사이에 칼라사진을 일면으로 한 스포츠신문이 진열되어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해 주로 스포츠신문을 사곤 했는데 스포츠 신문중에서도 일간스포츠를 구입해 읽었고 때때로 욕심을 부려 일간스포츠와 더불어 한 장를 더 구입하는 무리 수를 둘 때도 있었다.




차가 출발하고 잠이 오기 전 신나게 일면부터 훑어 나가면 길게는 이삼십 분이 소요되었으며 다 읽고 나면, 잘 접혀 부피가 적었던 신문이 부풀어 앞자리 공간을 차지하였다. 습독 완료된 신문을 대충 구겨 다리와 앞 의자 사이에 던져두면 꼭 신문을 사지 않고 탄 분들이 그 신문을 보자고 요구하곤 했는데 아니 줄 수 없는 상황이라 선 듯 보시라 하였지만 내심 500원이 아까워 상습적으로 무임승차로 악용하는 그들의 경우가 밉기도 했다. 또한 요즈음 스마트폰에 중요 스포츠를 중계할 때 데이터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옆 자석 사람이 슬쩍 곁눈질로 보듯이 신문도 쫘악 펼치면 면적이 넓다 보니 열심히 옆자리에서 도둑 읽기 하는 분들이 있어 공분을 사는 일도 허다하게 있었다. 때로는 내가 스포츠조선을 구입했는데 옆에 분이 일간스포츠를 보고 있다면 돌려보기가 가능해 요즈음 말로는 기분 좋은 대박 내지 득템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늘상 재미나는 스포츠신문의 기억만은 아니었다. 지하철 이건 버스이건 간에 승차해 신문 특히 스포츠신문을 보는 행위는 삼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일반 신문이 아니고 스포츠신문을 본다는 건 저급한 삼류로 보는 눈총 때문이었다. 그때는 만화를 보고 무협지를 보고 선데이 서울을 본다는 것은 못 배운 이들이나 하는 저급한 문화라는 편견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나 자신이 실제 B급 삼류라는 걸 부인할 수도 없지만 옛날 삼류 짓을 많이 한 것 같음으로 나의 인생은 삼류가 맞기는 한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가판대 종이신문도 무협지도 만화도 모조리 웹상으로 흡수되어 사라져 가는 문화로 남의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서로의 틀림이 기인한 잘 못된 삼류로의 분류였다면 틀림을 다름으로 받아들여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기를 기대해본다.

알고 보니 그때 나는 삼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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