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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Oct 03. 2019

영어에 복수중 입니다.

언어적 소질이 많이 부족했을뿐더러 남들만큼 절실하게 매달리지도 않았고 더불어 가난에 참고서 한 권 구입할 여력이 없었던 터라 영어라면 평생 공포의 대상으로 꼬리표를 달고 다니고 있다. 국어나 영어와 같은 언어적인 학문보다 수학, 과학, 기계 등의 이공계 계열이 적성에 맞아 학교 성적은 확연히 좋았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남들만큼 절실하고 꾸준하게 영어 능력을 향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참사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살아온 개인사를 세세히 들여 다 보면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사건이 크게 3가지가 있는데 8살에 아버지가 돌아 가신 것, 해양대학을 선택한 것,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이다. 이 것 중 하나만이라도 시간 여행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분명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란 상상을 가끔 해보곤 한다.  

 



발표 및 무대 공포증이 있음으로 세미나, 회의 등에서 발표자로 지정되면 시간이 임박할수록 긴장감에 스트레스가 최 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말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감을 가지는데 하물며 가끔 외국에서 시행되는 회의에 참석할 경우에는 상상하기 힘든 긴장감에 매우 곤혼스럽기 까지 하다. 7년 정도 외국계 회사에 근무할 때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이 외국 분임에  따라 그 한분 때문에 영어로 회의를 하게 된다. 영어로 발표를 하다 보면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함에도 경상도 억양의 버벅거림과 뒤죽박죽 영어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사장님께서 답답해서인지 심각하게 지켜보다 툭 던지는 말이 “그냥 한국어로 하세요”이다. 자존심 붕괴와 그 무안함이란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과 있을 땐 대화를 유창하게 잘하는 편인데 한국 사람만 끼면 스스로 위축이 되어 바로 말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외국 사람은 아무 관심 없는데 한국 사람만이 즉석에서 동료를 평가를 해버리고 그 평가결과가 순식간에 주변에 전파되어 버리니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운 좋게 정부기관에서 일을 하다 보니 문서 작성을 “한글”을 사용하고, 또한 마음만 먹으면 사기업보다 문서 작업에 영어단어 사용을 줄이기가 가능하기도 하였고, 업무에 사용하는 단어가 대부분 전문용어라 영어로 표현하다 보면 일반 분들이 이해가 어려워 한국어로 번역(신생단어를 만들기도 한다)하여 사용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았던 영어 용어들이 쉽게 한국어로 사용 가능하게 됨에 놀랐고 점차 그 용어에 쉽게 익숙해지더라는 엄청나지만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사실의 의미는 사용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결국 언론과 정부의 의지가 아닌가 싶다. 364일 방송에서 스스로 정체불명의 언어들을 저들이 먼저 사용해 놓고 한글날 10월 9일 단 하루만 정체불명의 언어를 사용한다 젊은이들을 까대니 말이다. 본인들이 근본적인 문제 제공자임에도 언론도 정부도 전혀 의지가 없어 보인다.


아직 입에 맴도는 동사무소는 어딜 가고 “센터”(사대주의에 바탕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 생각한다.), 선택이 “초이스”가 되고, 지방 특산물은 “로컬푸드”, 식당가는 “푸드코트”가, 결혼예식장은 “웨딩홀”, 자가는 “셀프”(정치권에서 셀프개혁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 많이 웃었다. 그냥 "자체 개혁"이라 하면 될 텐데), 바다수영을 “오픈워터 수영”, 회의를 "컨퍼런스"로, 점검을 "체크", 항목을 "리스트", "워라벨"은 무엇인지?. 내가 생각엔 모두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번 주 송도에 있는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갔더니 식장의 특성이 연세 있으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장소임에도 예식장 이름부터 이상(메리빌리아)하고 안내문구에 단 하나의 한국어도 없이 몽땅 영어다. 신부대기실 하면 될 것을 "버라이드 룸"이라 하면 더 모양새가,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인지.

 




영어에 대한 소심한 복수중이다. 물론 적법하다. 외국업체와 계약을 준비하면서 내가 왜 영어로 된 자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의문이 예전부터 있었기에 몇 년 전부터 업체에서 우리 사무실을 방문 때는 통역가를 동행하고 한글로 작성된 제안 문서를 가져오게 한다. 갑질중 이다. 명분은 "한글로 된 문서도 이해 안 되는데 이게 이해되냐?"시작은 어색하였어도 지금은 당연시되어 잘들 한다. 속으로 투덜거릴지 몰라도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기에.


내  하나의 변화가 세상을 하루아침, 급격하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브런치(이런, 이것도 영어네) 작가가 되면서 영어단어 사용을 가능한 줄여 최소화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모범을 보여주는 게 다가오는 한글날에 대한, 세종대왕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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