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주 사소한 일로 아내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하고는 싶은데 해서는 안 되는 국룰인 반찬 투정과 유사하게, 하면 그냥 기분 나쁜 지적질 때문이었습니다. 선천적 지적질에 대한 급발진 반감 유전자가 인간에게 있나 봅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싸 다닌 게 한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주말과 출장일을 제외하면 기나긴 봉사의 시간이네요. 남극과 북극 시즌이 되면 출장자가 워낙 많아 최소 식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회사 구내식당은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점심기간이 되면 늘 걱정이잖아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먹어야 할지 매일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한여름, 한겨울에 식당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위기도 몇 차례 있었지요. 반찬투정을 할 때도 있었고, 계획에도 없었던 점심 약속이 생겨 저녁에 안 먹은 도시락을 들고 갈 때면 벼락같은 화에 서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감당이 어려워 쓰레기통에 버리고 들어 간 적도 있었습니다. 회사 업무상 일어날 수 있는 일과 도시락을 싸는 어려움에 대한 이해충돌이라 하겠지요. 나름 해결책은 안 먹은 도시락은 회사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날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습니다. 묵은 밥 한 끼에 하루 도시락 싸는 거 면제을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최악인 것은 비건이기까지 합니다.
어느 오래전부터 도시락 반찬투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고충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아내의 도시락에 반기를 드는 간땡이 부은 남편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최근 잠들기 전에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 아내의 질문이 있습니다. "내일 도시락 쌀 거야?". 처음에는 "안 싸면 얘기해 줄게"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는데 그럼에도 매일 끊임없이 물어 이제는 그때마다 답을 줍니다. 그만큼 10년이란 세월의 도시락이 어렵다는 반증이고 저 또한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 이겠지요.
오늘 도시락은 이른 아침에 조리, 요리한 쌀밥, 프라이팬에 구운 두부와 김치, 버섯 전입니다.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리는 정성 도시락입니다. 아침 식탁에서 있었던 사소한 다툼이 미안해 지내요. 언제 부은 간땡이의 부기가 빠질까요? 언제 철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