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김춘식 Jul 02. 2024

도시락 10년, 간땡이 부었습니다

오늘 아침 아주 사소한 일로 아내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하고는 싶은데 해서는 안 되는 국룰인 반찬 투정과 유사하게, 하면 그냥 기분 나쁜 지적질 때문이었습니다.  선천적 지적질에 대한 급발진 반감 유전자가 인간에게 있나 봅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싸 다닌 게 한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주말과 출장일을 제외하면 기나긴 봉사의 시간이네요. 남극과 북극 시즌이 되면 출장자가 워낙 많아 최소 식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회사 구내식당은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점심기간이 되면 늘 걱정이잖아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먹어야 할지 매일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한여름, 한겨울에 식당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위기도 몇 차례 있었지요. 반찬투정을 할 때도 있었고, 계획에도 없었던 점심 약속이 생겨 저녁에 안 먹은 도시락을 들고 갈 때면 벼락같은 화에 서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감당이 어려워 쓰레기통에 버리고 들어 간 적도 있었습니다. 회사 업무상 일어날 수 있는 일과 도시락을 싸는 어려움에 대한 이해충돌이라 하겠지요. 나름 해결책은 안 먹은 도시락은 회사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날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습니다. 묵은 밥 한 끼에 하루 도시락 싸는 거 면제을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최악인 것은 비건이기까지 합니다.


어느 오래전부터 도시락 반찬투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고충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아내의 도시락에 반기를 드는 간땡이 부은 남편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최근 잠들기 전에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 아내의 질문이 있습니다.  "내일 도시락 쌀 거야?". 처음에는 "안 싸면 얘기해 줄게"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는데 그럼에도 매일 끊임없이 물어 이제는 그때마다 답을 줍니다. 그만큼 10년이란 세월의 도시락이 어렵다는 반증이고 저 또한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 이겠지요.


오늘 도시락은 이른 아침에 조리, 요리한 쌀밥, 프라이팬에 구운 두부와 김치, 버섯 전입니다.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리는 정성 도시락입니다. 아침 식탁에서 있었던 사소한 다툼이 미안해 지내요. 언제 부은 간땡이의 부기가 빠질까요? 언제 철들까요?


비오는 날, 정성, 갬성 도시락
매거진의 이전글 비도 오고 7월도 오고 여름도 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