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호태누각 03화

3화 누각 공사 시작

by 철용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너른 땅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몇 달 후 그곳에는 조금씩 누각의 뼈대가 생겨났고, 그 뼈대를 중심으로 조금 더 작은 뼈대가 이어지고 그 이어짐 위에 살들이 붙어가기 시작했다. 누각의 형태가 점점 갖춰져 가면서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주욱 일해온 이곳 원을 어떻게 떠나야 하지? 아니 떠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래 민주 누이에게 이야기를 해보자. 그날 저녁 해는 또다시 붉은빛으로 저물어가고 있을 무렵 민주 누이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며 이야기를 했다.

“누이, 나는 이제 곧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 누각은 잘 지어지고 있고?”

“네. 그런데 이 원을 어떻게 떠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저의 기억은 모두 이곳에서였습니다.”

“어리석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으려 했느냐? 너는 사내다. 짐승도 나이가 차면 사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법이다. 개의치 말고 객주 어르신께 이야기하고 떠나거라. 그리고 멀리 가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누이. 누이의 말대로 따르겠습니다. 한데. 혹시…”

“무슨 말인데 그리 뜸을 들이느냐?”

“저와 함께 일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누이의 재촉에 이런저런 생각도 없이 바로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

“새로운 곳에는 누이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

한참을 말없이 걷기만 하던 누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어둑한 노을을 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여기를 떠날 수 없다.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서 자라오고 일해 오면서 많은 것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객주 어르신께는 더욱이…”

“너마저 떠나는데 나까지 간다고 하면 어르신께는 큰 상심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 남아 있어야 그나마 어르신께서는 너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야.”

“너무 내 욕심만 채우려 한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너는 한 누각의 주인이 된다. 너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많은 재물을 투자한 공씨 어르신 어르신께도 큰 손해를 키칠 수 있다는 것도 늘 마음에 새기고”

“네. 누이”

“네가 새로운 누각을 만드는 것도 그리하겠지만 당연히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주인이 되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누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보태달라 하거라. 사내의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어려울 때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찌어찌 모았느냐?”

“네”

저놈은 소싯적부터 함께 어울리며 이곳 벽란도를 시끄럽게 했던 중기라는 벗이다. 워낙에 기질이 화통하여 다툼도 곧잘 일으키곤 하지만 힘 하나는 황소와도 겨룰 정도로 세다. 내심 중기 이를 이곳 누각의 호위 담당으로 점찍고 있었다.

“중기아, 요즈음에 통 연락이 없었다. 어찌 지냈나?”

“자네가 이곳까지 웬일인가? 술 한잔 사러 왔나?”

“소문이 맞는구나. 눈뜨면 술 아니면 싸움질이라더니, 왜 이리 사는 것이냐?”

“내가 뭐 사는 낙이 있겠느냐? 힘 하나 믿고 무사가 돼보려 했지만 이놈의 평민 신분이라고 뭐하나 되는 게 없다. 여태 개경의 귀족집에서 머슴질이나 하다 왔다. 세상이 참 억울하다.”

“그렇다고 너의 삶을 술만 마시다 끝내려 하느냐?”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 농사지을 땅이 있나? 배운 게 많아서 벼슬을 할 것이냐? 아니면 너처럼 누각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느냐?”

“비꼬는 것이냐?”

“너는 어찌하여 그리 큰 재물을 빌려 저 누각을 짓고 있는 게냐?”

“저 누각이 내 것이라 생각하느냐?”

“다들 너의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네가 몰래 주인의 재물을 빼돌렸다고도 한다.”

“하... 어찌 내막도 모르면서 그리 말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나는 그저 매일 꿈을 꾸고, 매일 그 꿈이 이뤄지기를 그려왔다. 너에게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없지만 시간을 내서 나의 처소로 온다면 반드시 그 꿈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하다 보니 우연히 개경의 큰 송상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의 도움으로 저 누각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 누각은 다시 말하지만 나의 것이 아니고 송상 어르신 공씨 어르신의 것이다.”

“……”

“너는 꿈이 있느냐?”

“……”

“꿈을 그려본 적이 있느냐?”

“없다.”

“그러면 나와 함께 꿈꾸고, 함께 그려보자.”

“……”

“내 처소에서 기다리겠다. 아직도 송화주를 좋아하지 않느냐?”

“……”

중기 놈이 올까? 고민이 되긴 하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 마음을 다잡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송화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놈이기도 하고, 그와의 정이 제법 깊다고 생각한다.

“너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송화주의 향기가 궁금하여 왔다. 매일 싸구려 술만 마셨더니 취하는 것도 더럽게 취하는 것 같구나.”

“향기를 맡으러 왔으면 빈손으로 와서 냄새만 맡고 갈 것이지, 그 손에 고깃덩어리는 무엇이냐? 하하하하하하”

“닥쳐라. 불판이나 준비해내거라. 송화주에는 불고기가 제일이다.”

“알았다. 오늘 너와 함께 취선을 만나보겠다.”

“웃기지 마라 취선은 너나 만나라 이 정도 송화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밤새 중기와 술을 나누어 마셨다. 어찌 잠이 들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은 것을 보니 어지간히 취한 것 같다. 중기는? 그냥 가버린 건가? 처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중기를 찾아보았지만 보이 지를 않는다. 아직 답을 주지 않았는데, 실망감과 걱정 속에 그를 기다려보기로 하지만 저녁까지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썩을 놈이구나”

하며 욕을 하며 중기를 지워보려 했지만 계속 생각나는 것은 그와 나눈 정과 믿음이 쉽게 놔주지를 않아서 그런 것일까?

그와의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달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 멀리서 사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보니 중기 이놈이다.

“간다 하는 말도 없이 어디를 다녀오느냐?”

“네놈 술 약한 건 이제 알았다. 다시는 술 마시자는 소리 말거라. 하하하하”

“저 누각을 나 혼자 어찌하라는 것이냐? 함께 일할 놈들을 구해왔다. 사람이 더 필요하다 하지 않았느냐?”

“이놈들이 생긴 것도 그렇고, 무식함이 너와 비슷하지만 그래도 힘도 좋고 의리도 제법이다. 너에게 제법 쓰임새가 있을 것이야. 하하하하”

역시 화통하다. 나 역시 중기가 혼자서는 누각의 호위를 맡는 것이 무리라 생각한 터였다. 그럼 그렇다고 글이라도 남 길일이지.

“안녕하십니까? 형님”

중기가 데려온 남정네들의 큰 인사 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뻔했다. 그런 모습에 어디서 찾았는지 중기는 송화주 한 병을 통째로 입으로 들이부으며 호탕하게 웃는다. 중기 이놈과 그와 함께 온 사내들과 함께 나는 이틀 동안 술을 들이부으며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아픈 속을 달래며 공사장을 와보니 중기 이놈이 이미 사내들과 함께 일을 도우고 있었다. 목수들은 그들의 힘에 놀래며, 손을 빌려준 그들에게 연신 감사의 표시를 한다. 역시 중기 이놈이구만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그들의 틈에 섞여 목재를 나르며 일을 도왔다. 함께 일을 마치고 처소로 돌아와 누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누각이 완성되면 이곳은 온갖 사람들로 붐비겠구나? 네가 일했던 원처럼?”

“그렇겠지”

“그러면 여러 나라에서 온 술도 마셔볼 수 있겠구나?”

“자나 깨나 술 생각이냐?”

“그럼 여러 나라에서 온 여자들도 볼 수 있는 거냐?”

“그렇겠지... 뭐? 야 이놈아”

“것 봐라 너도 여자한테는 껌뻑하지 않느냐? 하하하하”

“……”

안 그랬는데. 안 그런 척한 건가?

“그런데 대식국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너는 왜 나라 말은 할 줄 아냐?”

“아니 인사 정도밖에?”

“그럼 송나라? 원나라의 말은?”

“아니.”

“그럼 그들을 어찌 맞이할 테냐?”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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